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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pr 30. 2022

선정릉을 생각하며

사무실을 생각하며

 선릉은 국내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동네 한가운데 박혀있는 지난 왕조의 왕릉이다. 그 보존의 당위성에 대한 의구가 종종 제기되는 모양이지만, 설령 선릉을 싹 밀어버리고 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가 들어선다 한들 평생 내 것 될리 없는 나 같은 소시민 입장에서야 이 회색 도시에 조금이나마 녹지가 있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선릉은 성종과 그 왕비가 묻힌 곳이고, 같은 울타리 안에 그들의 아들인 중종의 묘 정릉이 있다. 으레 두 능을 아울러 선정릉이라 한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창 밖으로 선정릉이 보인다. 대충 접어낸 종이 비행기를 던져도 닿을만한 거리지만, 일 년이 다 되도록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곳이다.


 일을 하다가, 하아이 이거 좆같아서 못해먹겠네 하는 말을 중얼거리고 싶어질 땐 고개를 돌려 중종의 능을 본다. 그리고 왜란 때 도굴당해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 봉분 속 빈 공간에 살짜쿵 내 몸을 뉘이는 상상을 한다. 무어라 중얼거려도 아무도 들을 걱정 없는 어둡고 깊고 안온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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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은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다. 조선 역사에서 '왕족이 주도하지 않고 성공한' 최초이자 최후의 반정이었다. 실권은 반정의 주역들이 쥐고 있었고 실권없는 왕은 늘어뜨린 주렴 뒤에서 기침을 삼켰다.


 십여년의 (전문용어로) 바지생활 끝에 조금 숨통이 트였다. 이미 노년에 이르렀던 반정의 주역들은 차례로 늙어죽었고 그들이 남긴 당여들의 위세는 전 같지 았다. 왕은 기득권의 선이 닿지 않은 성균관에서 인재를 찾았다. 아직 당색에 물들지 않은 젊은이들을 직접 등고시켜 친위세력으로 육성할 생각이었다. 젊고, 젊음의 장점도 단점도 두 배로 부풀려 가진듯한 그들이 우두머리처럼 따르는 이가 있었다. 으레 열살 전후에 떼는 소학을 약관에도 늘 끼고 다녔고 직급이나 나이에 차이가 있어도 직언을 가리지 않았다. 한양 조가에, 이름이 광조라 했다.


 조광조와 그 일파들은 왕의 호의를 등에 업고 조정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반정의 주역들과 그 후예들을 견제해 지난 십년간 억눌려있던 왕권을 회복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라는 것은 왕의 생각일 뿐이었다. 조광조의 목표는 도학정치의 이상이었다. 도학정치가 무엇인지 상세한 설명은 불필요할 것이다. (실은 나도 잘 모른다) 중요한 건 조광조가 국가경영의 '원칙'을, 다시 말해 일국의 최고경영책임자 또한 예외없이 지켜야만하는 룰을 확립코자 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불행하게도 많은 이상주의자가 그러했듯 조광조 또한 실무에는 재주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가장 큰 실수는 소격서 폐지를 위한 왕과의 정면 충돌이었다. 소격서란 가뭄이나 기상이변이 있을 때 왕이 제를 올리는 곳이었다. 도교적 사상을 근본으로 한 곳이었고 조광조가 보기에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는 국가가 두기에 적절하지 않다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훗날 흐지부지하다 폐지 되어버린, 그러니까 그냥 둬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져버릴 그 사소한 것을 혁파한답시고 유무형적 정치적 자산의 태반을 소모해버렸다. 정확히는 정치적 자산의 기반이 된 왕의 신뢰를 소진시킨 것이다.


 아마도 그는 조정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이 '옳기' 때문이라 믿었던 모양이다. 실은 최고 권력자가 옳다 말해줘서 얻은 권력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딴에는 소격서가 그토록 사소한 것이기에 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은 것인지 모르나, 왕에게는 이토록 사소한 것조차 양보가 없으니 지난 수모의 십여년간 늘어뜨린 주렴 뒤에서 기침을 하던 환영이 어른거렸을 것이다.


 결국 조광조는 오래지 않아 친위 쿠테타로 실각되었고, 끝내 사약을 받아 숙청되고 만다. 그가 그리던 '개혁' 중 단 하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소격서는 왜란 때 무너진 뒤 복구되지 않아 그대로 폐지된다.


 이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본 사관이 남긴 기록이 전한다. 좋을 때는 군신간이 부자지간과 같아 마치 무릎에 앉힐 듯 하더니, 돌아서고 난 뒤엔 다들 뜯어말리는데도 바락바락 악을 써서 끝끝내 죽이고 말았으니 한 임금이 아니라 두 임금인 듯 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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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역사를 통해 미래를 배운다는 말은 헛소리에 가깝다 생각하는 편이다. 늘 그렇듯 진실은 사건과 사건 갈피의 행간과 맥락에 숨어있고,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를테면 좀 스케일이 큰 '라떼는 말이야...'와 다를바 없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중종과 조광조, 그리고 일을 하다보면 싫어도 알아지는 일들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공통점을 생각하면, 우리 사무실이 중종의 묘 앞에 위치한 것이 우연이 아닌게 아닌지 상념에 빠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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