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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May 22. 2022

나도 가능한 겁니까?

해피엔딩 장그래?

 몸도 마음도 지쳤다. 이유가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퇴근 후 타는 엘리베이터는 끝도 없이 가라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치킨과 함께 있는 술이나, 금연 3일차의 흡연, 질 줄 알고 까는 카드패, 급똥, 그리고 퇴사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까지의 금연이 아까우니 한 시간만 더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팀장에게 말을 꺼냈다.


 - 한 달 정도 쉬고 오겠습니다.


 팀장은 난감해보였다. 물론 세상에는, 특히 회사에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없어지면 매우 귀찮아지는 사람은 있겠지만.


 - 2주는 어떻게든 해볼게요.


 - 팀장님, 죄송하지만 한 달 쉬는 건 이미 결정됐습니다. 남은 건 회사와 합의하에 쉬느냐, 합의 안하고 그냥 쭉 쉬느냐의 차이 뿐이죠.


 즉답은 어렵다하여 사흘을 기다렸다. 뜻밖에도 일개 계약직 평사원의 처우 결정을 위해 팀장에서 이사로 이사에서 대표로 보고가 됐다고 한다. 난 몇 달 푹 쉬고 다시 사방팔방 뿌려야할 이력서 초안을 구상하며 사흘을 보냈다. 더 답변이 없으면 직접 대표에게 찾아가야겠다 생각한 나흘 째 답변이 왔다. 한달은 아무래도 무리고, 2주만 쉬라는 내용이었다.


 - 그 동안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팀장님. 종종 연락 드릴게요.


 - 잠깐, 잠깐잠깐! 아직 안 끝났어요.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그 동안의 노고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이번 재계약 정규직 계약으로 진행할게요. 물론 연봉도 오르고요.


 - 정말 너무 하시네요. 제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돈 더 달라고 이러는 거겠습니까? 어떻게 팀장님마저 이렇게까지 제 마음을 몰라주십니까? 정규직이요? 연봉 상승이요? 사측에서 절 고작 그런 놈으로 생각하고 계신다면...


 - ...


 - 한 번 견마지로를 다해보겠습니다.


 뭐, 그리하여 2주의 휴직과 덤으로 정규직 자리를 얻었다. 파견직과 계약직을 거쳐 해피엔딩 장그래가 됐지만 뭐가 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째됐든 조금만 더 버텨볼 작정이다. 정규직하면 대체 뭐가 그렇게 다른 것인지. 내 생애 가장 빠른 2주가 지났고 내일이면 또 출근이다. 그간 겪은 수천 번의 출근 중에 가장 끔찍하게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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