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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Nov 07. 2022

대동강, 튤립, 서브프라임, 코인, 스타트업

김선달의 몰락

 성실히 한 푼 한 푼 돈을 모으든, 왕창 대출을 받든, 하다못해 뜻밖에 복권에 당첨되든 하여 얻은 돈으로 조그마한 뙈기를 산 사람이 동네사람들을 불러모아 한바탕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지만, 머지 않아 재개발이 되면 이곳에 초고층 호화 빌딩이 들어설 거에요. 제가 책임지고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절 믿고 투자해주시면 우리 모두 부자가 될 거에요!


 사짜 느낌이 물씬하지만 동시에 솔깃하기도 하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지금은 전세계적 기업이 된 곳들의 시작 또한 대게 저런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이 섣부른 판단으로 부자가 될 기회를 날리고 땅을 쳤던가. 설령 그들이 진짜 사짜라고 해도, 사짜 아홉 명에게 돈을 날리는 거보다 '진짜' 한 명을 놓치는 위험이 훨씬 크기 때문에, 그들은 일단 속는셈 치고 돈을 투자한다. 마침 코로나 시국이 어쩌고 유동성이 어쩌고 하여 수중에 현금도 두둑하다.


 이렇게 돈을 끌어모은 사람은 기존의 땅을 개발하는 대신, 옆에 붙어있는 또 다른 땅을 산다.


 - 뭐라고요? 거 참, 모르는 소리 하시네. 지금 이 결정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얻을 열매를 두 배로 늘려줄 거라고요!


 그런 방식이 끝없이 반복된다. 가진 땅은 처음의 수십, 수백배로 넓어졌고 투자자들이 약속 받은 수익도 천문학적 액수가 되었지만, 정작 그 땅이란 건 잡초와 흙먼지만 가득한 황무지일 뿐이다.


 이것이 쿠팡을 필두로 하는 스타트업의 방식이다. 실속없이 규모만을 어마어마하게 키워내 시장을 완전 장악한다는, 이른바 적자 성장.


 그러던 중 와버린 것이다. 미국발 금리인상이라는 것. 그게 무엇이고 전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으니 참고 바란다. (실은 나도 잘 모른다)


 여튼 덕분에 넘쳐흐르던 유동성은 이슬보다 빠르게 말라버렸고, 온갖 허풍과 감언이설에도 껌뻑 넘어가 기꺼이 대동강 물이라도 사줄 것 같았던 투자자들은 팔짱을 단단히 끼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묻는 것이다. 그 땅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거라고? 그럼...


 - 한 번 벌어봐.


 이젠 더 이상 전처럼 이빨까기로 떼우기는 통하지 않는다. 말하지 말고 보여줘야 한다.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그 황무지에 집을 지어 세를 놓든, 주차장을 지어 주차비를 받든, 하다 못해 농사라도 지어 소출을 내서 지금까지 호방하게 질러왔던 개뻥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방법은 두가지일테다. 어느 스타트업계의 권위자가 말했듯 허풍을 시인하고 깔끔하게 망하든가, 사놓은 황무지 중 유지비가 많은 것부터 야금야금 팔아먹으며 비루한 병자의 죽음을 기다리던가. 물론 둘 중 어느쪽도 선택하기 끔찍하게 싫겠지만, 그 외의 경우는 없다.


 내가 소속된 곳은 당연하게도 후자를 택했다. 폭풍이 몰아쳤고, 많은 동료들이 떠나고, 매우 뜻밖에도 난 남았다. 싸서 그런가?


 다이어트가 필연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맞고, 판단 자체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난 카톡이별 내지 잠수이별에 비견될만한 이 무례, 그나마 희망이 있는 곳을 버리고 막다른 길인게 판명된 것을 남기는 보노보급 판단력, 그러고도 정신 못차리고 이 조직을 자신의 거대한 장난감 상자 정도로 인지하고 있는 저 뻔뻔함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문득 고대의 어느 철학자들의 문답이 떠올랐다. 여전히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다른 우주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계속 글이나 썼으면 그런 고민은 안했을 텐데. 그럼 난 대답할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배고프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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