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롬 Sep 07. 2020

보헤미안 랩소디

넌 너무 머신기타

 흔히 말하는 남중 남고 공대를 거치며 이성과의 연이 없었던 내 오랜 친구의 소원은 여자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군복무 이후 소원 성취를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노력했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주변으로부터 착해빠진 이미지를 변신시켜 보라는 조언을 받아들인 친구는 헤어스타일에 대해 여기저기 묻고 다니더니 급기야 파마를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열창하는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키는 꼬락서니였다.


 그 후 친구들 모임, 새로운 헤어스타일의 그가 출현하자 친구들은 동시에 침묵했다. 그 귀가 아플 정도의 정적 속에서 나는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저, 저저저...! 푸학학학학! 미친놈인줄 알았네. 미용사한테 보상금은 받았냐? 근데 왜 표정은 밝지? 저마다 던지는 촌평과 비웃음에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가슴이 부풀어있던 친구(이하 프레디)는 점점 기가 죽었다.


 I'm just a poor boy

 I need no sympathy


 차라리 삭발을 권유하는 무수한 조언들을 뿌리친 프레디는 몇몇 비슷한 처지의 주변인들을 모아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다. 근거 있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필리핀에서는 한국 남자가 인기가 많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프레디에게 기회의 땅이 될지도 몰랐다.


 필리핀어도 영어도 제대로 안 되는 프레디와 지인들은 어찌어찌 손짓발짓을 동원해 현지 클럽에 진출했다. 그가 위풍당당 클럽 안으로 들어섰을 때, 현지인들 또한 그 시대착오적 헤어스타일에 충격을 받아 벌어진 동공을 오므리지 못했으리라. 둠칫둠칫하는 클럽의 소음이 일시에 잦아들고 찡하는 이명도 멀어졌을 때, 현지인들의 귓가에도 다음과 같은 노래가 흘렀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그러나 프레디는 함께한 동료들이 죄다 현지 여성을 하나씩 꼬득여 옆에 앉혀두고 꽁냥거리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맛의 산미구엘만 연거푸 들이켜야 했다. 뭐가 문젠지 알 수 없었다. 힌트라고는 몇몇 현지 여성들이 프레디를 보고 던지는 공통된 단어 뿐이었다. 머신기타.


 여성들은 그 뜻을 묻기도 전에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곤 했기에, 프레디는 홀로 그 뜻을 고구해봐야했다. 몇몇 신빙성 떨어지는 가설 외에 떠오르는 것 없이 시간만 자꾸 흘렀다.


 이윽고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고, 십수병째의 마지막 산미구엘 빈병을 내려놨을 때, 문득 클럽의 시끄러운 소음의 갈피에서 들려온 깨달음에 프레디는 전율했다. 머신기타란, 다름 아닌 못 생겼다의 필리핀식 발음이었음을.


 Mama-!

 woo woo woo woo-!


 결국 프레디는 아무런 성과없이 돈만 쓰고 돌아왔다. 그리고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위의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한 태도로 전해줬다. 빈 소주병이 더 쌓인 후 프레디는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야, 내가 그렇게 못 생겼냐? 뭐라 적당한 할 말을 생각해내지 못한 나는, 그저 그 순간 떠오르는 노래의 한 구절을 불러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carry on, carry on

 as if nothing really matter

작가의 이전글 1994년 어느 늦은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