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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Sep 14. 2020

취생전 醉生傳

(원작 : 허생전)

 취생은 봉천골(奉天洞)에 살았다. 국사봉(國思峰) 어귀에 오래된 감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 지난 장마철 비바람이 휩쓸어가 모기장도 없는 창문이 늘 열려 있었는데, 밤이면 각다귀며 나방이며 들어와 담배 연기에 취해 나풀거렸다.


 취생은 놀기만 좋아하여 밤에는 술 마시고 낮이면 자며 아주 가끔 그 갈피에 글을 읽고 쓸 뿐이었다. 그의 부는 환갑 너머 조울증에 가족 괴롭히는 것으로 소일할 뿐이니, 그의 모가 복지관에서 품을 팔아 두 사내를 부양했다.


 어느 날 취생의 모가 낮잠을 자는 그의 허리를 걷어차며 말했다.


 - 아침에 나갈 때도 자고 있었건만 오후에 이르러 퇴근하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내가 투미하여 자네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구나. 그토록 원이라면 영원히 잠들 수 있도록 이 어미가 도와주겠네.


 취생은 비굴하게 웃으며,


 - 저 또한 이 처지가 좋지만은 아니하나 의원이 최근 재발한 아토피(俄吐皮)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신선처럼 지내야 한다지 않습니까. 감상할 선경(仙境)도 술 따라줄 선동(仙童)도 없으니 대신 선주(仙酒)라도 충분히 마실 수 밖에요.


 - 아직 젊은 자네니 나가서 노가다(勞加多)인들 못하겠나.


 - 또 안오면 고발한다기에 별 수 없이 갔던 지난 주 예비군에서도 쓰러질 뻔 했으니,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이 때 노가다했다간 십중팔구 병원비만 더 나올 것이니 별 수 있습니까.


 - 그럼 왕궁수문장교대의식(王宮守門將交代儀式)이라도 다시 할 수는 없나.


 - 아직까지 궐(闕) 방향으로는 소피도 보지 않으니 불가합니다.


 모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 이 쌍놈(祥者)의 새끼야, 헛소리말고 나가서 뭐라도 해!


 취생은 속 풀려고 끓인 라면을 마저 먹고 일어나면서,


 - 아깝다. 내가 당초 놀고먹기로 일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반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취생은 거리에 서로 알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가패배내(家覇陪內)로 가서 노트북으로 알바천국(斡婆天國)에 접속해 물었다.


 - 돈 바로 나오는 알바 뭐 있소?


 신규 오픈 화장품 매장 디피 알바를 말해주는 이가 있어, 취생이 곧 전화를 했다. 취생은 알바채용담당자 변씨를 대하여 업무 내용이니 급여니 시시콜콜 묻고나서 말했다.


 - 내가 내일부터 열심히 일해보려고 하니, 급여 선지급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 미친놈(狂者).


 하고 당장 전화를 끊었다.


 끝.






 왕궁수문장을 끝내고 가졌던 마지막 백수 생활 중 쓴 글이다. 지금의 생활도 크게 다를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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