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다 보면 사람을 사용해야 하는 물건처럼 대하는 사람이 있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상황을 만드는 사람. 그게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상대는 전생에서도 무슨 원수지간이었는지 좀처럼 서로의 사이가 좁혀지지 않는다. 운전을 하다 보면 뒤에서 조급하게 경적을 울리거나 바짝 쫓아오는 차들은 대개 거의 도착지에 임박한 차량들이다. 이와 같이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목표의식을 내비치는 조급함으로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 일 수 도 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반드시 범주안에 들어야 하고 한없이 부족한 상태를 채워야만 한다고 여기는 타인을 나이가 들면서 기피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오래된 부부 또는 연인, 가족 친구에게서 견딜 수 없는 상황들을 벗어나기 위해 악인이 되어야만 하는 결정은 늘 가혹하기만 하다. 다수는 소수를 소수는 개인을 묵살하려는 시도가 잘 사는 방식이고 악인으로 살아가라는 세상의 지침서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살아가는 게 버겁기만 하다.
알게 모르게 종적을 감추거나 자발적 실종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가끔 생각난다. 그들은 왜 무슨 이유로 유령이 되기로 결심한 걸까.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사라지고 밀려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소수는 자신들의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을 배척하는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또는 반대로 개인은 소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공격할 것이다. 물리적이지 않아도 그 무게에 짓눌려 생을 다한 이들은 얼마나 오래 슬퍼했을까. 얼마나 오랜 겨울을 보내고
또 시드는 봄을 맞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