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쁨문고 Nov 23. 2021

빛나라, 그럼 너는 1광년 밖에서도 눈부실 것이다.

빛나라, 그럼 너는 1광년 밖에서도 눈부실 것이다(3)

 “그래서 지원자는 스스로가 창의적이라고 생각합니까?”


 “음... 제가 생각하는 창의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세상에 없었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는 창의성입니다. 두 번째는 세상에 이미 공공연하게 밝혀져 있는 내용 두 가지를 융합해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창의성입니다. 저에게는 처음으로 정의한 창의성의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정의한 창의성은 누구보다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의 마지막 질문에 깔끔한 대답을 하고선 미묘한 미소가 새어 나올까 입단속을 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해 만족한 듯 미소 짓는 면접관들을 보며 합격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왼쪽 입꼬리가 씰룩거리려는 걸 막기 위해 온 신경을 왼쪽 엄니에 집중시켜 근육을 잡아두었다. 새어 나온 미소로 인해 겸손하지 못한 태도를 보인 지원자로 보이는 것은 곤란했다. 적당히 긴장한 모습이지만 자신 있는 태도가 가장 적당했다.     


 사실 이번 질문은 충분히 준비된 답변이었다. 스스로 창의적인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보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 말의 공란을 두어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짧은 시간 생각을 정제하여 자신감 있게 전달하는 것이 마무리. 면접장을 나오며 다시 돌아 고개 숙여 짧은 인사를 했다. 합격점을 주신 면접관들에 대해 감사함을 담았다.     


 면접장 문이 닫히자 다시 심장이 요동치듯 뛰었다. 교육업을 하며 단상에 올랐던 경험 덕분에 오히려 무대에서 침착할 수 있었다. 마치 취업을 위해 준비해온 시간이었던 것처럼. 면접 전과 후에 떨리는 감정을 어쩔 수 없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실전에서 침착함을 빠르게 되찾는 방법뿐이었으니.     


그러자 곧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다음 순번 지원자가 보였다. 한 눈으로 봐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움츠러든 어깨에 눈앞 70cm 정도의 허공을 보는 듯한 눈동자가 긴장이라는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예술가 같았다. 긴장이 공간을 타고 흘렀다. 잠시 면접 안내위원이 다른 곳을 보는 틈을 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 면접관들이 엄청 부드러우신 분들이더라고요. 압박 질문은 없으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을 내용을 전해 주었다. 눈에 조금 생기가 오는 것을 보니 안심되었다. 집에 오는 길에서야 경쟁자일지 모르는 사람에게 응원해주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그 순간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면접장을 나오며 느꼈던 합격이란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되뇌는 것뿐이었다.



                         

 동기들은 모두 단상 앞에서 발표를 마친 A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또한 그 박수는 나에게도 양분되어 돌아왔다. 발표가 끝나갈 무렵 눈치를 챘다. A는 신입사원 연수에서 처음 본 친구가 아니었다. 약 한 달 전 면접장에서 응원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뜻하지 않은 미담이 되었다. A가 합격해 같은 장소에서 연수를 받는다는 것이 기쁘다는 기쁨이 채 밀려들기 전에 많은 사람의 시선이 있었다.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지만,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 때문에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3주간 진행되는 신입 연수의 첫 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난생처음 집을 떠나와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걱정보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꿈을 포기하고 온 곳에서 실패할 수 없다는 무게가 있었다. 꿈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것을 하지 못해서가 아닌 다양한 보기 중에 하나로서 ‘선택’했음을 증명해내야 했다. 그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증명.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의미로 꿈같은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수백 명의 동기 중 대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또한 무대에 대한 경험이 많았던 것이 주효했다. 공대생들에게 무대에서 유창한 말솜씨를 가진 사람은 색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보다 조금 더 무대 경험이 많은 것뿐이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신입사원들에게는 다른 점은 특별함이 되었고 관심거리가 되었다. 입사하며 조용히 회사에 적응해보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과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틀에 한 번씩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사랑스럽고 감사한 시간이 이어졌다. 과제를 열심히 해내는 조원들이 멋있었고, 다른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수상을 해내는 것도 상당한 성취감이 있었다. 동기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 조직을 만들어 역할을 배분한다는 것은 자치를 위임한다는 것인데, 자치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 관리 감독관에게 조직의 대표가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회사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책임을 각자 지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조직에 대한 책임은 대표가 일부 짊어지게 되었다. 관리 감독관에게 따로 호출되어 관리에 대한 질책을 받았으니. 그래도 행복했다. 즐거웠다. 이 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하게 될 일을 이어주는 이음쇠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위해 이 세상이 준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었을 만큼 몰입했다.      



         

 하루는 관리 감독관을 통한 공지가 있었다. ‘12시 이전 무조건 취침하시오.’ 신입사원들은 열정에 기름을 부어가며 새벽 3, 4시까지 몰입을 하고 있다. 보니 일과 중에 진행하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11시 반에 취침하고서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션은 일찍 자는 것이지 숙면을 하라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 정도로 모두가 미쳐있었다. 그러지 즐겁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지르밟아가며 매일의 행적을 남겼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왔다. 연수의 마지막 과제는 사장단 앞에서의 발표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식어버림이었다. 모든 열정은 처음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취미를 즐기는 과정에서도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았다. 거기에 하고 싶다고 나섰던 교육업에서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차이점이라곤 멈추게 되었을 때 일이 끊겨버린다는 것 정도일 뿐. 그러다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회사와 일에 대한 열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생각에 닿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하는, 업무를 하는, 사회생활을 하는, 어떻게든 삶의 행복을 찾고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가며 가끔은 낙담하고 실망하게 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키워드가 되었다. 이후의 일은 간단했다. 연수 기간 중 중요한 과제와 커다란 이슈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했다. 물론 발표자는 나 하나였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아야 했다. 발표 자료가 완성되고 난 뒤 맨 마지막 페이지는 모두가 공감해주길 원하는 마음으로 한 문장을 추가했다.



빛나라, 그럼 너는 1광년 밖에서도 눈부실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발치 해버리려다가 참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