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라, 그럼 너는 1광년 밖에서도 눈부실 것이다(5)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호텔 라운지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마이클 부블레의 중저음의 목소리와 어우러진 멜로디가 호텔의 온기와 어우러져 몸을 더욱 따습게 만들었다. 중국 출장 첫날 호텔 입구에서 마주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자신의 차례가 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마냥 나날이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11월 말은 조금 이른 시기가 아닌가 싶었지만, 호텔의 입구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지역이 크리스마스로 물들어 갔다. 중국은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자연스레 맞이하는 시기인 것처럼 초록과 빨강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12월 달력 속의 검은색으로 인쇄된 25일을 제외하고.
중국의 바람은 한국의 것과 다르다. 차를 타거나 걸으면서 묘하게 느끼는 위화감이 있는데 그건 주변에 산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괜히 한국의 땅의 7할이 산으로 되어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늘 보던 산이 없다는 이유도 대륙의 바람은 거셌다. 바람의 강도도 그렇지만, 몸의 온기가 쌓일 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들로 체감 온도는 온도계에 찍혀있는 것보다 한참은 더 낮게 느껴졌다. 이곳의 겨울은 겹겹이 옷을 입고도 목도리와 귀도리를 추가로 해야 안심할 수 있는 계절이었다. 바람을 맞고 걷고 있자면 높은 건물과는 무관하게 황량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따듯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크리스마스는 이 계절과 잘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호텔로 들어오는 몇 걸음은 이세계로 들어가는 곳 같았다. 입구에서부터 반짝이는 트리와 은은하게 캐럴이 흘러들어온다. 마치 근처에 화로가 있는 것처럼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한기로 경직된 몸의 근육들을 한땀 한땀 풀어주었다. 하루 중 가장 무거운 발걸음을 딛는 출근길과 가장 고된 몸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을 녹여주는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투숙하는 호텔 방이 안락함으로 따지자면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었지만, 방으로 들어가기 전 몇 발을 앞두고 라운지의 매력이 끌려 소파에 앉아 쉬는 것을 결정했다. 여섯 시에 눈을 떠 열한 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탄력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짧은 시간에 자리 잡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망할 놈의 출장은 주말 시간을 크게 허용하는 편이 아니었다. 토요일은 기본적으로 근무를 하는 것이다. 자고로 주말이란 이틀이 있음으로써 금요일 오후부터 맞이하여 일요일 오전에 끝나는 것이 아니던가. 늦은 퇴근을 고려한다면 금요일 저녁은 충분히 반납할 수 있다. 그래도 토요일 저녁까지 앗아가는 건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었다. 부서장이 일요일에도 출근한다는 말을 듣고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무슨 마법을 걸어두었길래 저렇게 충실한 인재가 될 수 있었을까. 저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사람이 왜 평일의 나와 선배들에게 그리 무책임하게 잘못함을 전가하는데 힘쓰는 건가. 그리고 이른 퇴근이라는 명목으로 회식을 종용하는가. 종용이라는 단어의 ‘잘 설득하고 달래어 권하다’ 뜻을 알고선 종용보단 직권으로 강요했다는 표현이 더욱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턱 쏜다며 절반만 계산하고 생색을 내면서 말이다.
여하튼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 동안 중국이라는 낯선 여행지를 충분히 즐겨야 했다. 출장지역을 떠나는 것이 안 된다는 조건이 있어 멀리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애초에 당일치기는 한국에서도 꽤 제한되는 여행이다. 하물며 대륙이라 불릴 만큼 넓은 땅덩어리인 이곳에서 당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교통이 복잡하기로 소문난 부산에서(교통이 문제였을까) 운전을 배웠기 때문에 (안전)운전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세뇌당하듯 들어온 공산당에 대한 이미지, 공안에 대한 소문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특히 영어라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에서 경미하게라도 사고가 나면 답이 없었다. 중국어를 연습해보았지만, 할 수 있는 건 겨우 농담 따먹기로 쓸 수 있는 한 두 마디가 전부였다.
매주 일요일 아침을 분주하게 맞이해야 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하루를 즐기지 않으면 이미 주말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다. 이미 몇 주에 걸쳐 주말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주변에 대한 탐색은 끝났다. 호텔 근처의 강변을 따라 30분 정도 보통 걸음으로 걸으면 쇼핑센터부터 레스토랑까지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나온다. 지레 겁먹어서 한 번도 들리진 못했지만, 몇 군데 눈여겨본 곳들이 있었다. 대부분 현지 음식이었고 고급스러워 비싸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그러다 다시 귀국하면 다시 경험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분주해진 것이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매주 일요일을 알차게 보내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가 되었다. 이날이 마지막 주말이라고 생각을 못 했으니 말이다.
주말 하루는 중국을 생각하고 느끼고 즐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법하면 유사 폭풍이라 불릴만한 거센 바람이 사방에서 사람들을 후려쳤다. 더욱이 물가였기 때문에 자비란 없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주어진 하루라는 사실은 개인의 사정일 뿐이었다. 지는 해를 보고 있으니 괜히 자신이 청승맞게 느껴졌다. 주에 하루 있는 주말을 악착같이 즐기려는 모습과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이 기분을 복잡 미묘하게 만들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기대 셀카를 찍고 웅장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중국의 조형물들을 보았지만 혼자서는 그 기분이 나지 않았다. 바람이 전해주는 황량함이 마음속까지 불어 들어왔다.
호텔 문이 열리자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였다. 전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빛을 내고 있었다. 빛나지 않는 입체감 있는 별이 트리의 꼭대기에서 사람들을 내려 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별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내리자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잠시 고민하다 입을 뗐다 다시 붙였다. 거울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하려다 삼켰다. 그러자 머쓱해져 웃으며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잔잔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황량함이나 쓸쓸함이 있었지만, 오히려 중국의 겨울과 잘 어울렸다. 노랫말처럼 크리스마스가 온 것만 같았다. 이제야 몸에 온기가 돌고 있음을 느꼈다.
방에 들어와서 하루의 노곤함을 풀어주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았다. 이제 목민심서를 거의 다 읽어 가는 중이었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여유롭게 읽어온 책이었다. 느끼는 바가 많아 형광펜으로 표시해둔 부분들을 짚어가며 책의 마지막을 보려 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서 책을 읽으며 쉬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은 지성인의 모습으로 딱이었다. 라운지에서 듣다 못 한 마이클 부를레의 캐럴을 틀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싶었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