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니님. 혹시 유죄인간이라는 표현을 아십니까? 전과자가 아니라 유죄인간입니다. 보통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별명이에요. 예를 들면 외적으로도 수려하면서 섬세하게 사람을 돌보는 매너를 가지고 있다거나, 그윽한 눈을 가지고 있는데 눈을 마주 보며 미소를 짓는 등의 모습이죠. 사실 매력 있는 이성들에게 붙여지는 별명이 아닌가 싶은데요. 주니님은 다른 의미(?) 유죄인간이셨군요.
아마도 자이언츠 팬이 아니라도 프로야구를 좋아하는(애증의 관계라도) 사람이라면 한 명쯤 떠오르는 유죄인간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누군가 꼬드김이 없었는데도, 스스로 야구에 입문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주변에서 이렇게 조언해 주죠.
“굳이, 왜 힘든 길을 선택하려 하냐.”
물론 같은 조언은 몇 번일 뿐, 그렇게 원한다면 누구보다 친절히 야구장으로 모셔갑니다. 서비스로 응원 도구 하나쯤 사줄 수도 있죠. 자이언츠라면 클래퍼가 되겠고요. 기쁨은 나누면 두 배라잖아요. 음…. 아쉽게도 이쪽 세계는 슬픔도 나누면 두 배가 되는 단점이 있지만요. 특히, 우리 자이언츠의 경우는 주로 슬프기 때문에 기쁨의 도파민이 몇 배가 됩니다. 단점이 없다니 너무 좋은 팀이네요. 하하.
우리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을 긁어가는 건 유죄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물타기를 하기 위해 밴드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좀 더 다른 매력을 충전해서 진짜 요즘 밈으로 회자하는 '유죄인간'이 되고 싶다랄까요. 그러고 보니 이번 주 토요일에는 밴드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곡만 연습하는 게 아니라 6월의 공연을 준비하는 중이었거든요.
초면인데 이쁘게 찍어주셨네
공연 시작 전에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에 비해 생각보다 잠에는 쉽게 들었어요. 아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리적으로 이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준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거든요. 우선 하루 이틀 빼곤 매일 연습을 했어요. 평일에는 컨디션이 안 좋으면 한 시간, 다음날 급한 일이 없다면 세 시간이 넘어서도 계속 기타를 잡고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최대 6~7시간 정도 있었던 날도 있었고요. 밥을 먹고선 남는 시간을 대부분 기타와 함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야구를 포함한 모든 것에 관심도가 낮아지는 시간이었죠.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보컬 수업도 따로 받았습니다. 세보진 않았지만, 다섯 번 정도 다녀왔습니다. 제 담당은 기타와 노래였거든요. 역량보다 어려운 곡들이 선곡되는 바람에 이중고가 있었답니다.
신발도 맞춰 샀지요
홀가분했습니다. 아쉬움이 당연히 남았지만요. SNS를 통해 공연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싶었지만, 함께 연주한 세션들의 허락을 다 맡은 뒤에 주니님께도 전달해 드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실수를 했는지, 하루가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유한다면, 잘한 부분만 짧게 영상으로 만들지, 확 티 나는 실수까지 다 담아야 하는지 아직도 고민이 됩니다. 이렇게 들뜬 마음으로 홀가분한 이유는 역시 후회 없이 연습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과물 대비 만족도가 더 높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밴드 공연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장소를 대여해야 합니다.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음향은 어떤지, 지리적으로 위치는 괜찮은지도 봐야 합니다. 음향도 신경 써야 합니다. 통기타를 예로 들면, 그냥 기타를 쳤을 때랑 앰프로 줄을 연결해서 나오는 소리가 완전 같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 사전 소리 세팅을 해줍니다. 이번엔 선배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었죠. 이어서 공연 당일에는 음향이 관련된 엔지니어들께서 도와주십니다. 밴드는 전체적인 조화로움이 필요합니다. 어느 하나가 튀지 않으면서도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으면서도 보컬의 소리를 또렷하게 전달해야 하니 참 할 게 많습니다.
엔지니어의 중요성은 현장에 와보면 확 와닿습니다. 그분들이 손을 스치면 소리가 조금씩 좋아짐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저야 아직 음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자이니 그들의 손길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단 말이죠? 오래 음악을 준비하고 원하는 소리를 미리 준비해 왔던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불쾌하지 않을까도 싶더라고요. 밴드의 전체적인 세팅을 마치고 악기별 미세 튜닝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악기에 직접 손을 대면서 수정하시기도 하더라고요. 중요한 건 최종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사전 세팅까지 완료한, 몇몇은 자신의 일부처럼 느끼는 악기에 손을 대 버리는 거니까요.
희한한 게 이런 상황을 보면서 스포츠가 생각나더라고요. 특히 야구 말입니다. 조력자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되는 프로야구 말이에요. 저는 최근 직관을 다녀왔습니다. 역대급으로 진행되었던 역전의 역전 역전의…. 역전을 거둔 날 말입니다. 주니님을 포함한 많은 자이언츠 팬에게 축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마 자이언츠가 수년간 가보지 못한 코리안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그런 경기였거든요. 심지어 트윈스와의 경기. 팬들 사이에서는 엘롯(꼴)라시코라고 불리는 경기에서 말입니다. 주로 졸전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조롱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었지만, 그만큼 많은 스트레스와 재미를 주는 경우가 많아 왔습니다. 이날은 '서로 잘했기 때문에 최고의 승부가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경기를 직관했으니, 수많은 축하가 있을 법했습니다.
하지만 몇 아쉬운 점 중 가장 큰 부분은 심판의 재량이었습니다. 우리 감독님이 퇴장을 불사하고 어필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상황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트윈스의 공격 당시 1루 주자가 2루로 도루를 하면서 타자는 스윙을 돌리는 Hit and Run 작전이 나왔었습니다. 타자는 헛스윙을 했고, 1루 주자는 2루에 세이프 판정을 받은 상황이었죠. 그 상황에서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자이언츠 포수는 메이저리그 못지않은 견제 능력을 갖춘 손성빈 선수가 자리했었고 포구도 잘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을 던지지 않는 상황이 좀 의아했던 순간이었던 거죠. 순간 주심은 삼진을 당한 타자의 송구 방해를 지적했고, 다시 1루로 귀루하라 명했었습니다.
그러나 순간 네 명의 심판(야구장 경기장 안에는 홈, 1루, 2루, 3루에 각각 심판이 각 위치에서 경기 진행을 돕는다.)이 모여 잠시 상의를 하더니 귀루 판정을 엎고 도루(1루에서 2루로 달렸던)를 인정해 주는 판정을 한 겁니다. 이에 포수 출신인 우리 감독님은 이 상황에 대해 어필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선수들을 위해 싸우다 퇴장까지 당한 상황이 되고 말았죠. 결국 송구 방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대립하는 느낌이지만, 송구 방해라는 의견이 좀 더 많은 느낌이긴 합니다. 우선 삼진을 당한 오스틴 선수가 지금까지 자이언츠에 보여줬던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이 미워 보이기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떠나 주인공이 되어버린 심판진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주도 심판이 지배하는 경기가 있었죠. 오심이 다섯 번이나 나왔던 경기 말입니다. 다행인 건 제가 그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던 거죠. 아마 머리가 부글부글 끓어버렸을 겁니다. 상승세인 자이언츠에 찬물이 끼얹어져 버리는 상황이었거든요. 우리의 마무리 투수 김원중 선수가 막아내지 못하며 결국 경기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스트라이크, 볼에 대한 판단이 AI로 이루어지면서 오심이 많이 줄었습니다. 심판의 오심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한편에는 있습니다. 다만, 그게 한 경기에 하나가 안 되어야 하는 거죠. 이게 뭡니까. 한 경기에 다른 종류의 오심이 다섯 개라뇨. 모두가 분개했을 상황입니다. 야구는 기세이고 흐름인데 말이에요.
말하려다 보니 점점 라이트 한 팬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이만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이렇게 분개할 정도면 얼마나 아쉬움이 있었단 말이었나 싶습니다. 그만한다고 몇 번 되뇌었는데 다시 불평이 새어 나오는 같은 한 주였네요. 다음부턴 주인공이 돋보일 수 있도록 원활하게 진행해 주는 심판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한 팀에게만 오심이 다섯 번이 몰리는 건 여러모로 이해가 안 되긴 하니까요.
역시 야구에 대해서 떨어진 관심에 불을 지펴주는 건 직관에서의 짜릿한 승리가 맞나 봅니다. 직관 때 솔직히 너무 재밌는 경기였음에도 초반에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다음 주가 공연이었으니, 당시에 많이 상했던 목을 아끼기 위해 응원을 최소화하고자 했었습니다. 직관에서 소리 지르기를 자제하던 상황이었죠. 역전의 역전의... 역전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 소리를 질렀습니다. 세상이 떠나라 목을 썼습니다. 예상치 못한 정보근 선수의 멀티 홈런, 오스틴 선수의 파울 홈런, 김원중 선수의 마지막 아웃카운트까지 모두 가슴에 담기엔 차고 넘쳐 응원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평소보다도 과하게 소리를 질렀던 탓에, 제대로 소리를 내는 데 3일이 걸렸고 노래를 완창 하기까지 며칠이 더 걸렸습니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과 반대로 공연 당일에는 오히려 목 컨디션이 그간 없었던 정도로 좋아져서 연습 때도 못한 삼단 고음을 지르기도 했거든요. 결과론적으로는 여러모로 후회 없는 한 주였습니다.
승리의 자이언츠
다시 야구로 시선을 돌리는 데까지 같은 자리에서 응원해 주신 우리 주니님에게도 감사하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편지 분량을 적게 가져가는 라이트 한 팬이 되고 싶었으나, 이번 주는 아쉬움과 흥겨움이 넘치는 한 주네요. 이번 편지에는 지금보다 더한 표현이 많았지만, 수많은 Backspace와 delete 키가 사용되었다는 점은 안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