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니님. 이번 주는 주니님의 말을 따라 야구에 열중해 본 라이트 한 드리킴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최근 많은 일을 겪고 있지만, 대부분 회사에서 일들이라 티 낼새 없이 내적으로 정신없이 보내는 중입니다. 현생에 치인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분주한 시간이었어요. 그나마 버스로 이동하거나 다른 일들을 하면서 짬짬이 귀로 중계를 들으며 야구와 함께했습니다. 불타는 열정이 있었다기 보단, 꼭 봐야겠단 의무감에 집착을 하면서 함께한 한 주인 것 같네요.
그래서였을까요?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던 자이언츠와 이글스의 주중 시리즈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몇 번 이야기한 것처럼 자이언츠 팬들의 수많은 루틴 중 "내가 보면 진다."라는 루틴 때문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현생이 우울한데 잘 야구마저 우울하니 활력소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편지 작성을 미루고 미루다 일요일에 다시 펜대를 잡게 되었습니다. 비록 나눈 적 없던 약속이었지만, 주말 다이노스와 경기에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간 덕분에 다시 힘을 얻었거든요.
저는 동네에서 어린 시절에는 주인공은 '우리 팀, 착한 놈', 악당은 '느그 팀, 나쁜 놈'이라고 불렀습니다. 모두가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확신이 있던 시절 멋진 편에 늘 속하고 싶기 마련이니까요. 이번 시리즈에서 몇 명이 부활 탄을 쏘면서 살아났는지 모르겠다 싶을 만큼의 상승세로 인해 오랜만에 마음 놓고 '우리 팀'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니까요? 그런데 조금만 둘러보면 조금은 다른 듯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도 있더라고요. 장소는 바로 회사입니다.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회사 사람 간의 대화가 참 재미납니다.
"OO아, 너희 팀장님 어디 계셔? 지금 회의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잠시만요. 저희 팀장님 지금 이전 회의가 안 끝났습니다."
"너희 팀장님은 왜 이렇게 약속을 못 지키시냐." 이런 식입니다. 혹시 이런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요? 포인트는 둘은 같은 팀이라는 사실입니다. 상사에게 괜히 아쉬운 소리를 들을 때면 쓰이는 표현이라고들 하더라고요. 우리의 범주가 아니라 남의 범주로 넣어버리는 거죠. 비슷한 느낌으로는 야구 시즌이 시작하면서 연패를 당하고 있는 팀이 ‘아직 개막을 안 했어.’, ‘이번에 그 팀 해체했을걸?’이라는 표현이 있죠.
메모... 너네 팀장님...
우리 둘이 자이언츠의 경기를 봐온 각자의 시간만 합쳐도 꽤 긴 시간이 될 겁니다. 애증이라는 감정이 꽤 생겨버렸을 시간이에요. 물론 빠져있는 단계는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말이죠. 오래된 시간만큼 익숙해져 버린 사이예요. 익숙하다는 것은 좋으면서도 위험한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드는 감정은 편안함이었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친구, 때론 가족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어서 맞이한 감정은 지루함입니다. 연승과 연패를 이어가면서 줄다리기하려 하지만 매년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관계에서 활력이 생기지 않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매 경기 희망을 품는다는 게 다를지도 모르지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관심을 겪는 중입니다. 언제든 돌아가면 있는 존재라고 생각되기도 하거든요. 특히 관계에 변화가 없다면 더더군다나 말입니다.
때론 이런 감정이 일방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관을 자주 갈수록 감정의 교류가 생기는데, 집관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일방적인 감정만 남습니다. 아쉽게도 우리 자이언츠는 이길 때보단 질 때가 더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다시 야구를 찾습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다시 돌아옵니다. 다행히 프로야구는 그 자리를 지켜주더라고요.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조금은 지치고 조금은 힘들어서 떠나도 기다려주더라고요. 그 사이 팀이 매번 이기기는 말도 안 되는 승률을 가진 팀으로 변모하진 않지만 말입니다. 그것이 야구의 장점이려나요?
그래서 이번 주가 좋았습니다. 주니님의 경종과 함께 야구에 집착하는 시간을 보냈던 결과 일주일간 정말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 노, 노, 애, 노, 락. 다소 편중된 느낌이 있지만, 애와 락이 주는 쾌감이 있었습니다. 돌아온 손호영 선수의 활약, 멋지게 성장하길 바라는 김민석 선수의 싹쓸이 2루타, 터지라 터지라 외치고 있던 고승민 선수의 만루홈런,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오는 나승엽 선수의 2루타 등 하루에 너무 많은 것이 풀렸습니다. 나눠서 하면 안 되는지 싶지만, 인생 마음대로 되는 게 어딨습니까. 다소 루틴한 회사 생활도 하루하루가 변수가 가득한데, 조금의 영향으로도 몸의 컨디션이 바뀔 수 있는 운동선수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거죠.
마음을 비워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한주 내내 고됨이 가득해서 야구를 보면서 기운을 더 빼앗기는 듯한 한 주였습니다. 고해성사 같은 느낌의 편지가 이어지는 것 같지만, 왠지 그런 시간을 보낼 때도 있더라고요. 다시 생각해 보니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하기 싫어병을 조금 더 넘어 무기력함을 느끼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무의미함에 대해 고민하는 주입니다. 아주 다양한 취미와 함께하던 최근의 시간까지도 싸잡아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던 시간이었어요. 오히려 그 의미를 찾게 해주던 것들에 의미가 흔들리니, 저라는 사람 자체가 흔들렸나 봅니다.
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삶에 변주를 계속 주고 있었는데, 몇 년 주기로 오는 센치함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기분입니다. 최근엔 밴드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뮤지컬도 보러 다녀왔습니다. 2년 전쯤 새로 가지게 된 취미인데, 소비의 금액이 커서 그렇지 꽤 웅장하고 멋진 취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홈트레이닝을 시작했습니다. 옷이 얇아지는데, 제 몸은 두꺼워지고 있더라고요. 회식도 있었습니다. 일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속한 모임이었기 때문에 나름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분명 즐거운 시간이 가득했다 했는데, 아직 이 감정을 헤아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일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는 듯합니다. 웃고 떠드는 시간이 잘 흘러가고 있거든요. 조금 의미를 잃은 듯한 느낌은 있지만, 이전과 같이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분야를 알 수 없는 삶의 슬럼프가 잠시 온 걸까요. 어디서 왔는지,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 답답합니다. 그래도 주말의 승리는 매우 기뻤습니다. 다시 돌아 스포츠를 보는 건 이런 부분에도 장점이 있는 듯합니다. 무슨 일이 계기가 되어 갑자기 팀의 기세가 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작은 변화가 있어서 분위기가 바뀐 것 같습니다. 마치 이유 없는 슬럼프처럼 이유 없는 상승이 있기도 하니까요. 물론 그 안엔 ‘우리’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섞인 것은 당연하겠지만요.
우선, 제가 목표하는 것은 세 개입니다. 일단 이상에서 이탈하지 말 것. 하고 있던 취미는 일단 유지할 것. 꾸준히 방을 청소할 것. 제가 가진 것의 항상성을 지키고 유지하는 거죠. 언제 어떻게 다시 에너지가 넘쳐흐를지 모르니 일단 준비하려 합니다. 늘 그래왔듯이 아직도 멋지게 성장하고 있고, 터지라 터지라 응원하고 있는 제가 어느 순간 생각보다 빠르게 또 변화된 모습이 되어있을 기반이 될 테니까요.
자이언츠를 보면서 평소의 생각을 담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오늘은 주니님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가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주니님의 제안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을 하는 중입니다. 매번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게 되고요. 이번에 야구를 같이 보자 다짐했건만,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결국 같이하지는 못하게 되었네요. 마음만 앞섰던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다음만 기약하기엔 시간이 너무 남은 듯하니 일단 직관을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승패를 떠나 야구장의 냄새가 그리운 오늘입니다. 저도 얼른 슬럼프에서 돌아올 테니 다시 무기한으로 시작된 우리의 약속의 시간도 돌아오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