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니님. 오랜만에 편지를 쓰려하는데 왠지 집에서는 쓰기 싫은 날입니다. 카페에 나와 카페의 백색소음과 함께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요즘엔 참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가 이어지고 있어요. 오히려 유난하다 싶을 만큼 좋은 날씨가 특이사항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여전히 매일 기타를 치고 보컬을 연습하는 하루를 꾸준히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은 같은 노래를 매일 연습하면서 어제와 차이가 없는 듯한 하루를 보내면서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혹시 기타를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을까요? 제 첫 기타는 아버지께서 쓰시던 친구였습니다. 기타와의 첫 만남은 고속버스터미널이었습니다. 당시 배송을 받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찾으러 갔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도 벌써 20년 정도 되었네요. 여하튼 꽤 정을 주고 있는 녀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연습을 잘하고 있던 와중 제 마음이 틀어지는 계기가 생깁니다. 줄이 끊어졌어요.
최근 수십 시간을 들여 기타를 치고 있었던 연습의 결과물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꽤 오래된 기타 줄이 끊어질 타이밍이 되었던 것 같더라고요. 물론 기타 줄이 20년 된 건 아니었어요. 늘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기타 줄이 끊어지는 경우는 왕왕 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상비용 기타 줄을 상비한 기타리스트입니다. 고작 이런 시련에 꺾일 순 없죠. 그래도 기타 줄을 바꿔본 적은 없으니, 끊어진 직후 잠시동안 옆 후배의 기타를 잠시 빌려 연습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버린 구동이
갑자기 눈에 불이 들어오더라고요. 코드를 약하게 살짝 잡았을 뿐인데 청명한 소리가 나더라고요. 손가락에 힘을 덜 줘도 좋은 소리가 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기타가 오래되면 플랫(기타의 구역을 구분하는 금속으로 된 부분)이 기타 줄과 마찰로 인해 변형이 생겨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선 더 많은 힘을 줘야 하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매번 익숙하지 않으실 듯한 분야를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요즘이군요.
여하튼 기타 줄을 교체하려는 과정에 기타를 만진 지 오래된 지인이 ‘이 줄은 그래도 고급 줄인 편인데, 다음에 좋은 기타를 사면 바꾸는 건 어때?’라며 조언해 주더라고요. 그와 동시에 세상에는 어떤 기타들이 있고, 어떤 플랫폼을 통해서 중고 거래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며칠간 기타의 종류와 제조사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60만원으로 시작해서 눈높이가 1,000만원으로 올라가는 것은 정말 순간이었습니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갔습니다. 주니님 혹시 구매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말을 아시나요? 비속어긴 한데 ‘그돈씨’라는 말입니다.(그 돈이면 씨, OOO산다 라는 표현.) 다시 정신줄을 잡고 몇 가지 모델을 선택하고선 주변의 조언을 받았습니다.
낙원상가의 악기
주니님은 낙원상가라는 곳을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게는 서울 종로를 가면서 매번 지나가기만 했던 곳입니다. 음악을 한다면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죠. 사실 악기에 관해 관심이 없다면, 지나칠 때면 '여기 이런 곳이 있구나?'정도겠죠. 그래도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있으니 비교해서 시청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우선 방문했습니다. 초보자들은 악기 간 성능 차이를 체감하긴 쉽지 않기 때문에 도움이 될까 했지만, 언제 또 들러보겠냐는 마음으로 찾아갔더랬죠. 예상과는 다르게 3시간이나 이곳에서 지박령처럼 전전했었습니다. 적은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니 쉽게 덜컥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여하튼 크래프터라는 제조사의 꽤 괜찮은 기타를 구매했습니다. 오랜 고민 덕분일까요. 꽤 많은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추가 할인을 받으면서 말이죠.(원래 그렇게 서비스를 받는 걸까요?)
지금은 새로운 친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주변인들이 모두 입을 모아 ‘그래서 이름은 지어줬어?’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 첫 공연 곡이 될 ‘10cm-부동의 첫사랑’에서 이름을 따 ‘부동’(같지 않다)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부동부동한 느낌이 괜히 부드러울 것 같은 느낌이라서 맘에 들더라고요. 매일 2시간 이상을 부동이 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부동이가 생기고 난 뒤에는 기존에 있던 친구는 연습실에 두고 부동이는 매번 들고 다니는 중입니다. 연습실의 환경이 악기를 보관하기엔 딱히 좋지 않을 거란 말을 귓등으로 듣다가 부동이를 데려오고서야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한 거죠.
안녕 부동아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 음악과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매우 흥분한다는 겁니다. 우선 저는 메신저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음악, 밴드, 기타와 관련된 주제만 나오면 수다쟁이가 되어버리죠. 그리고 요즘에 듣는 음악은 전부 밴드 음악으로 바뀌었습니다. 밴드의 세션(기타, 베이스, 일렉기타, 드럼 등)이 조금씩 나뉘어서 들리니 더 재밌더라고요. 남미 여행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2달 반 정도 된 취미치곤 아주 제대로 몰입하며 즐기는 모습이 신기할 뿐입니다. 그 와중에 몇 번의 권태기가 왔던 것 같지만, 어찌저찌 넘기고 있고요.
반면 제 손가락의 굳은살이 깊어질수록 달라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모든 애정에는 총량이 있기 때문에 모든 애정을 여러 곳에 나눌 수 없더라고요. 예를 들면 기존에 즐겨하던 모든 취미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애정이 줄어드는 부분을 억지로 신경쓰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 성향 때문인데, 조금이라도 억지가 들어가는 순간 반발심이 치솟아 오르는 점 때문입니다. 30여 년 사용해오면서 이제는 꽤나 잘 알게 되었거든요.
굳은살이 올라옵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니님과 편지를 주고받고 있어서라고 포장을 해보겠습니다. 다행히(?) 야구는 꾸준히 챙겨보고 있습니다. 일상에 시간이 부족하면 하이라이트라도 찾아서 보고 있습니다. 정 시간이 안 된다면 결과는 꼭 챙겨봅니다. 승리하는 날엔 혹시 순위가 올랐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순위표도 찾아보고요. 의무감도 아닌 버릇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이미 삶에 묻어버린 것. 굳이 표현하자면 목뒤에 있는 점이랄까요. 평소에는 보이지도 인지하고 있지도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습관처럼 손으로 만져보는 그런 점 말이에요. 심지어 누군가는 내 뒷모습을 점으로 구별하기도 할 만큼 나라는 사람을 구분해주는 표식이 되는 거처럼요.
밴드 활동과 함께 기타 연습을 시작한 시점은 분명히 기억납니다. 그런데 야구를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역시나 목뒤의 점 같은 느낌이 맞나봅니다. 특히나 생각보다 야구의 룰은 예외가 많고 복잡한데 어떻게 다 알게 되었는지도 말이에요. 아마 하나씩 하나씩 쌓여간 것이겠죠.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를 만큼 오랜 기간 눈이 돌아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좋아하는 만큼 싫증도 쌓여왔나 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밴드가 재밌는 이유도 야구를 보던 시간이 비어버려서가 아닐까 싶어요. 올해는 유난히 기대했는지 실망이 컸던 것 같더라고요. 보통은 포기하면서 직관을 찾아다니던 저였는데 말이죠.
앞서 말한 것처럼 너무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으려 합니다. 충분히 애증이 쌓여있으니까요. 또 너무 빠져있지 않을까 미리 걱정될 만큼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벌써 다음 주면 주니님과 야구를 보자 약속했던 시간입니다. 벌써 몇 달 동안 야구를 보자마자 이야기했는데, 드디어 그때가 오는 듯합니다. 벌써 인가 싶지만 참 오랜만입니다. 얼른 보길 고대한 만큼 힘을 내는 날이 되길 바라고 바라봅니다. 보기 전까지 주니님의 하루들을 응원해 봅니다. 얼른 봅시다.
- 역시 지금은 관심사가 음악인지 음악 관련 이야기로 시작했더니 보통보단 편지가 조금 더 길어진 드리킴 올림. -
P.S 사실 데이브레이크 보컬인 이원석 님의 ‘Monsters’를 커버해 보고 싶은데, 밴드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 중입니다. 덕업일치까진 아니더라도 취미를 협업하는 느낌으로 병행하면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