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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8. 2020

조깅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본다

일상 에세이


조깅을 하다가 매일 들러서 팔 굽혀 펴기를 하는 곳이 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가니 그 시간에 매일 오는 사람들을 본다. 그중에는 매일 빠지지 않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한 아버님이 있다. 정말 열심히 한다. 꼬박 한 시간 이상 근력 운동을 하다가 돌아가는 것 같다. 아버님들은 대체로 표정이란 것이 없다. 거의 무표정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 나도 운동할 땐 그렇다고 하는데 운동을 하면서 기분 좋은 고통이 올라올 때는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하고 표정이 달라지기도 한다. 요컨대 김종국이 중량이 많이 나가는 덤벨을 들어 올릴 때 그렇게 표정이 변한다. 하지만 아버님들은 그런 표정 자체가 얼굴에서 소거되어 있다. 어머니들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그 아버님은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약간 구부정하게 걷는다. 팔이 길어서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간을 넘어선 유인원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아버님은 운동을 하면서 늘 주위를 주시한다. 눈매가 아주 날카롭고 얼굴은 늘 무서운 표정이다. 하지만 말을 하면 충청도 사투리를 쓰면서 마음씨 좋은 아버님 같은 분위기를 또 가진다. 가만히 있으면 무표정의 무서운 빌런 같은데 누군가가 다정함을 발사하면 마냥 아기 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한 마디로 그 아버님을 압축하려고 하면 장어처럼 요리조리 스르륵 쏜살같이 빠져나가고 만다. 아버님의 어떤 촉은 본인이 하는 운동 그 이외에 또 하나에 꽂혀 있다. 운동을 하면서 늘 주위를 둘러보고 주위를 주시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레이더망에 누군가 딱 들어오면 막설임 없이 그쪽으로 간다. 아버님의 그런 행동은 그곳에 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노출된다. 운동을 하면서 시선은 레이더처럼 뚜뚜뚜뚜 하며 목표물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목표물이 레이더망에 걸리면 목표물을 주시한다. 그러다가 어떤 마음의 동요가 끝나면 목표물로 다가간다. 거기로 가서 그곳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자세를 지적하고 바로 잡아주려고 한다. 충청도 사투리로. 

팔은 이렇게 해야 한다, 등을 곧게 펴야 한다, 다리를 모아야 한다,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무거운 근력 운동은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허리가 아프게 된다, 팔을 곧게 뻗어야 한다, 머리를 좀 더 뒤로 해야 한다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한다. 충청도 사투리로. 충청도 사투리라 참 듣기 좋은데 말이 많아서 길어진다. 듣는 사람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힘들어진다. 

아버님이 하는 말은 대체로 다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든 사람이 대체로 자세가 안 좋은 상태로 운동을 하면 안 하니만 못하게 된다. 그러니 아버님이 하는 말은 모두 맞다. 그런데 아버님은 주로 어머님들에게 다가가서 대체로 그런 지적을 한다. 처음 맞닥뜨린 아버님의 지적에 어머님들은 보통 따라 하려 하지만 그것이 두 번, 세 번, 올 때마다 지적을 받게 되면 나중에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네, 네, 알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제가 할게요.”로 바뀌고 만다. 어떤 어머님은 그 아버님의 레이더망에 걸려서 자신에게 다가오면 운동을 하다가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만다.

아버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렇게 하면 허리가 나중에 아파유"라고 한다. 그 말이 멀어져 가는 어머님의 등에서 맴돈다. 아버님은 지치지 않고 운동을 하는 것처럼, 운동을 하면서 지치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지치지 않고 레이더망에 누군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정말 지치지 않는 것 같다. 벌써 내가 본 것만 4개월짼데 매일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참 재미있다. 어째서 매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레이더망에 들어온 어떤 어머님이 부족한 자세로 운동을 하고 있으면 그곳으로 가서 이렇게 보다가 지적을 한다. 팔은, 등은, 다리는, 얼굴은, 라며 말이다. 그래서 아버님이 움직이는 반경 3미터 안에는 사람들이 없다. 그 모습을 매일 보는 것이 참 재미있다. 아버님은 마스크를 하지 않아서 또 어머님들이 피하는 것 같다. 아버님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는 마스크를 하고 있지만 이곳에 도착하면 마스크를 벗고 운동을 한다. 어쩌면 요즘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님을 피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저곳으로 가면서 오늘은 또 누가 아버님의 레이더망에 걸릴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몸을 풀고 있으면
오늘도 열심히 신 아버님
그러다가 어느 날 레이더망에 걸린 한 어머님
일단 레이더망에 걸리면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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