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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17

9장 3일째 저녁

217.

 마동은 철길 위에서 친구들을 잃은 그 이후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꾸준하게 자기 자신을 버려왔다. 당시 공간의 냄새도 버렸고 뜨겁게 달아오르던 철길의 감촉도 버렸다. 기차 속으로 딸려 들어가던 친구들의 모습도 버렸다고 생각을 했다. 버려진 것들은 봉인이라는 이름의 상자가 마동의 작은 기억들과 함께 단단히 묶여 깡마른 땅을 힘겹게 파서 그 안에 묻어 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기찻길에서의 기억도 더불어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째로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했다. 자신을 점점 마모시키는 훈련의 일환으로 달렸던 것이다. 마동의 의식은 과거를 무시한 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억지로 강요받고 있었다. 고등학교 사건이 있던 그때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무렵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려 해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마동이 이 뒤죽박죽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달리는 것뿐이었다. 달리고 또 달렸다. 오직 달리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기억을 잊기 위해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마동이 할 수 있는 것은 달리는 것뿐이었다. 설령 기억이 나지 않고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해도 그는 달리는 것 이외에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꾸준하게 매일매일 달렸다. 강변을 달렸고 바닷가를 달리고 운동장의 트랙을 달렸다.


 마동에게는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또 하나 있었다. 대학교 시절 동거를 했던 연상의 여자였다. 까마득히 오래되고 깊은 바닷속의 이야기처럼 꽁꽁 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바위가 비바람에 깎여 작은 돌이 되었지만 없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마동의 무의식은 그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다. 동거의 기억은 기분 나쁜 예감으로 등을 축축하게 만들었지만 마동은 애써 외면하며 지냈다. 생활의 어두운 부분이 이미 마동의 등에 단단하게 달라붙어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동은 무시하려 했다. 실수였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만난 마동과 그녀는 생활비를 아끼는 방편으로 동거를 시작했고 두 사람은 무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어려움 없이 생활을 했다. 생활에 있어서 많이 부족했고 행복한 수준의 생활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둘 다 불만은 없었고 불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젊었다. 마동은 그녀와 동거를 하면서 아르바이트하는 사이사이에 시간이 비면 어김없이 달렸다. 기찻길에 관한 기억이 조금씩 지워져 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고 싶었다. 더럽고 강한 진액을 품은 촉수로 뒤덮인 기차가 아이들을 갈가리 분쇄하고 찢어발기는 모습을 잊는 것은 거울을 통해 매일 보는 자신의 얼굴만큼 잊기 어려운 일이었다. 꿈을 꾸다 아이들이 기차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 나타나면 마동의 몸은 열꽃으로 뜨거워졌다. 안구가 아팠고 눈을 뜨면 잠시 동안 방안이 자줏빛으로 물들었다가 물감이 물이 번지듯 사라졌다. 불쾌한 마비가 다리에 퍼진 느낌은 다리가 아닌 이물감으로 불안하기도 했다.


 마동은 기억을 묻기 위해서 달렸다. 훈련을 하고 남이 알아봐 주지 않는 노력을 했다. 벚꽃처럼 달렸다. 벚꽃은 봄이 오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운다. 그 관념 속에 인간의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자연은 기다려주거나 뒤쳐지는 법이 없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듯 물줄기가 아래로 흐르듯 모든 것은 패턴으로 지나간다. 연상의 그녀는 마동과 동거를 한지 두 달 만에 아이를 가졌다. 아이가 들어서면서 마동과 그녀는 미래를 약속했다. 그녀는 마동을 사랑했고 마동 역시 그녀를 사랑했다. 마동은 그녀를 사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안아주지는 못했다. 자의적으로 안을 수 없었다. 마동은 그녀를 제외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더라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녀와 결혼을 하고 그녀를 닮은 아이를 보며 그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머릿속에서 암울한 기억을 잊어버리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 여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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