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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3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59

9장 3일째 저녁

259.


 그때 어두운 암흑의 저 앞에서 누군가 마동을 불렀다. 목소리는 불사의 목소리 같았다. 불사의 목소리가 따로 있지는 않겠지만 장군이의 목소리와도 달랐고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와도 달랐다. 목소리는 두려움을 띠는 목소리가 아니었고 연약하고 신비스러운 목소리였다. 알고 있는 목소리. 불투명하고 축축한 공기층의 암흑을 뚫고 보이지 않는 가능성으로 마동의 귀로 전달되어 왔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들렸지만 가능성은 확실히 눈에 또렷하게 보이는 피사체처럼 점진적으로 확실성을 띄었다.


 “사라, 당신이 어떻게 온 것입니까”


 목소리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하기에는 불확실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마동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뿐이지 않는가. 하지만 마동이 부른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목소리를 받아들였다. 그 목소리에서 사라 발랸샤 얀시엔을 확신했고 계속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큰 소리로 불렀다.


 “사라, 사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아닌가? 그럼 누구의 목소리리란 말인가. 연약한 목소리는 어둡고 불투명 층위를 뚫고 마동에게 전달되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목소리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목소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마동은 자신에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목소리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엇나가기만 했다. 집중하지 않았지만 마동의 주위에서 들리던 목소리, 봄눈이 내리던 저녁의 바람 같은 목소리, 사려 깊은 고양이의 눈 같은 목소리, 사회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목소리, 일종의 안온감이 드는 목소리였다. 마동을 부르는 불사의 목소리는 그랬다. 마동의 머리는 무질서에 가까웠다. 곁에 머물렀던 목소리의 주인을 마동은 애타게 불렀다.


 “어디 있어요? 여기는 어디입니까? 제발 좀 나와주세요. 실은 무섭다고요!” 큰소리로 부르고 또 소리를 질렀다. 입을 벌릴 때마다 입에서 파란 불꽃이 무섭게 나왔다. 어두운 공간에 울리던 불사의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우우웅 우우웅 두개골을 쪼개버릴 굉장한 이명이 마동의 머리를 조여왔다. 눈이 없고 퀭한 모습의 도시의 그림자들이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시간의 흐름이 뒤틀리고 어두운 공간 속 도시의 제멋대로인 그림자들이 크윽 소리를 내며 구부러지고 차가운 물속에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동의 몸에서 타오르는 불구덩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몸을 불태우던 푸른빛의 화마가 마동에게서 빠져나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화마가 사라지자 마동이 입고 있던 옷들이 전부 까맣게 재가 되어서 허공에서 흩날렸다. 마동은 발가벗은 채로 힘없이 목소리의 주인을 불렀다.


 살아있는 실체처럼 푸른빛은 마동의 몸에서 빠져나와서 입고 있는 옷과 함께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퀭한 하나의 구멍의 눈을 가진 수십 명의 영혼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뱉었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그 모습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의 수초가 해류에 휩쓸리는 모습이었다.


 구오오옹.


 소리는 목 없는 자들의 영혼의 고통을 말해주었다. 그때 마동의 눈앞에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나타났다. 아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선명하지 않았고 뿌옇게 보였다. 기름종이 뒤의 피사체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은 부 얘 보이기만 했다. 뿌연 모습 속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마동의 손을 잡으려고 팔을 내밀었다. 마동은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 차갑고 냉정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을 잡아 보고 싶었다. 또 정신이 번쩍 뜨일 그녀의 깊은 눈빛과 숨이 멎을 것 같은 그녀의 가슴골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마동도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팔에 힘이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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