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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2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58

9장 3일째 저녁

258.


 어디선가 느껴본 어둠의 질.

 본 적이 있는 어둠이 촉감.     

 

 암흑의 기류가 마동의 몸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암흑이 도사리고 있는 더 밑바닥의 끝, 보이지 않는 암흑의 끝으로 마동은 떨어지고 있었다. 마동의 몸에서 무게감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동굴 밑으로 천천히 떨어지듯 떨어졌지만 엘리스와 다른 점은 전혀 동화 같지 않다는 것이고 몸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본능도 타올랐다. 갓 비행을 시작 한지 하루가 지난 제비의 가벼운 깃털처럼 몸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고 투포환 선수들의 무거운 쇳덩이 같기도 했다.


 마동은 그렇게 깊은 지하의 암흑으로 어두운 기류 속으로 떨어졌다. 푸른 불빛 사이로 메마른 도시의 그림자들이 마동의 시야에 들어왔다. 푸석푸석하고 썩어빠진 악취 가득한 더러운 먼지의 그림자들이었다. 그림자 속에는 정념이 다 말라서 틀어져버린 인간의 영혼이 퀭한 하나의 눈으로 마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일까.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이런 곳에서 떠돌고 있는 저들은.


 그 순간.

 이것이 죽음인가.     


 늘 생각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서 마동은 현재를 대입해 보았다.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에 대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그동안 착실하게 해왔다. 삶과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죽음에 다가가려 했다. 어떤 유명한 철학가는 살아있다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있기에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살아있다고 느끼는 그 이면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밝은 아침이 오면 처음부터 아침이 밝은 것이 아니라 어둠이 있었기에 밝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데리다의‘살아있다’도 그런 것이다. 죽음이라는 관념은 끝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삶을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해서 죽 이어지는 하나의 연장선 같은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오래전 돌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우에게, 아버지에게 전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암흑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심연의 중심에서 커다란 울림이 들렸다. 몸은 점점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뜨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재가 되어 버린다면 친구들에게도 누구에게도 어떤 말을 할 수가 없다. 아아 이렇게 허망하게 끝을 맞이할 수는 없다. 며칠 있으면 소피도 한국으로 온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서 확정 지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는개를 만나서 물어봐야 할 것들이 있었다. 마동은 떨어지는 암흑의 흐름 속에서 발버둥을 쳤다.    

  

 도대체 최원해 부장은 어떻게 된 것일까.

 는개는 날 걱정하고 있을까.

 클라이언트의 꿈 리모델링 작업의 진행은 순조로울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소피는? 분홍 간호사는?

 아아     


 마동은 또 머리가 조여왔다. 두통의 고통이 뇌를 터지기 일보직전으로 몰고 갔다. 마동은 밑으로 떨어지면서 중력을 거부하고 애써 몸을 움직여 일어서 있는 자세를 만들었다.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졌고 그 바람에 불은 점점 활활 타올랐다. 손바닥을 목 언저리에 올렸다. 목에서는 전기밥솥에서 갓 꺼낸 밥처럼 뜨거움이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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