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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31.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60

10장 4일째

260.


 팔. 을. 뻗. 는. 다.


 늘 그렇듯이 팔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동의 입에서 또 한 번의 욕이 나왔다. 의족을 옮겨다 붙여 놓은 듯 전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고작 팔을 들어서 그녀의 손을 잡는 것뿐인데 어이 이봐, 가만있어, 나는 더 이상 네 생각대로 움직이기 싫어,라고 팔은 마동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모습에 곰팡이가 끼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곰팡이가 그녀의 몸에 완전하게 증식했다. 마동은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뻗어서 그녀를 잡으려고 했지만 팔은 미술관의 거대 조각처럼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저것도 나의 또 다른 에고일까. 슈퍼에고는 아이들을 괴롭혔고 그녀까지 괴롭히고 있다. 어째서 또 다른 나는 사람들을 괴롭히려고만 하는가. 나는 이럴 때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가. 제발 멈추라고!


 팔은 암흑의 바닥을 향해 밑으로 내려가 있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아, 보고 싶어, 사라 발렌샤 얀시엔.


 그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곰팡이가 덮어 버렸다. 곰팡이는 그녀의 몸을 점점 갉아먹더니 먼지로 만들었고 흐리고 흐린 하나의 뿌연 그림자로 보일 뿐이었다. 그림자의 모습은 는개였다.


 아니, 는개가? 아아, 괴롭다.     



[4일째]

 눈을 뜨니 낯선 방이었다. 예상 밖으로 어제보다 눈이 잘 떠졌다. 몸은 아주 가벼웠다. 그렇지만 몸은 아직 뜨거웠다. 몸이 뜨겁다는 명제에서만 벗어나면 정상적인 상태였다. 뜨겁다는 느낌은 뭐랄까, 뜨겁지만 뜨겁지 않았다. 분명 몸은 뜨거웠다. 불에 달군 주전자의 몸통처럼 뜨거웠지만 만져질 수 있는 뜨거움이었다. 눈을 떠서 동공을 움직여 방안을 살폈다. 시야에 들어오는 환경이 마동이 사는 집이 아니라서 놀랐고 일어나려고 팔을 드니 팔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또 한 번 놀랐다. 가만히 생각을 했다. 암흑의 밑바닥 끝으로 한없이 추락을 하면서 불투명한 막 저편에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보며 팔을 뻗었지만 팔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이 는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애당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아니고 는개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가 되었던 확실한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그럼 나를 불렀던 그 연약한 목소리는 는개의 목소리란 말인가.


 는개의 손과 닿았을 때 마동이 보았던 암흑의 세계를 는개도 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아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시신경으로 받아들이는 사물과 풍경이 전부 구겨져서 안으로 말려들어오는 기분이다. 엉망진창이다. 누구 하나 제대로 말해 주지 않는다. 검사를 하고 나온 결과에 대해서도 의사는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째서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일까.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변이가 시작되고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고 질문 투성이다. 마동은 옥상의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먼 곳에서 밝아오는 빛을 보며 자신의 몸은 파란 불꽃에 휩싸여 타올랐다. 파란 불꽃은 욕망과 본능이 결합하여 증폭되었다가 마동의 몸에서 떠나갔다.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분명 어제를 포함해 이전의 아침에 비해 몸이 가벼웠고 눈도 제대로 떠졌다. 한데 몸을 일으키려고 하니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대수술을 거치고 정신을 차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몸은 그대로이고 정신만 멀쩡했다. 팔도 다리도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몸에 맞지 않는 톱니바퀴를 이어 붙여놓은 듯 삐거덕 거렸고 철탑 인간이 몸을 뚫고 마동의 몸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팔다리는 마동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붙어있고 팔을 들어 올리니 불편함이 녹록히 전해져 왔다. 마동은 일단 누워서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있다가 눈을 뜨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평소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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