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를 좋아하세요?
오래된 영화 ‘세븐’은 꽤 무서운 영화였다. 캐빈 스페이시의 살인 장면은 정말 실제 같았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영화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브레드 피트와 예쁜 기네스 펠트로가 온통 공포뿐인 영화에서 잠시나마 미소를 짓게 해 준다. 영화 속 그들의 모습에서 불행한 삶을 벌리면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면이 있다. 모건 프리먼이 두 사람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두 사람은 가난하지만 행복했다. 기차가 지나가면 집이 흔들거린다. 이 장면은 영락없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라는 단편 소설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아내와 결혼을 하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단독주택에 입주하게 되어서 기뻤다. 단독주택에 방도 몇 개나 있고 비록 작지만 마당도 있어서 고양이도 키울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단독주택의 집세가 이렇게 저렴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치즈케이크처럼 생긴 주택 양옆으로 철길이 나 있고 하루에도 수시로 지하철이 지나갔으며 시끄러워서 기차가 지날 때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양옆으로 동시에 기차가 지나갈 때면 식탁이며 집이 온통 덜덜거렸다. 그런데 기네스북에 나올 만큼 가난했던 치즈케이크를 닮은 그 집에 살 때가 행복했다고 한다.
단편 소설이라고 하지만 하루키의 본인의 이야기다. 사소설의 형식이다. 구글을 통해서 찾아보면 그런 집이 일본에 있다. 츄오센과 고쿠분지 사이의 삼각형 토지에 있는 집이었다. 소설 속에서 고풍스러운 집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러한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사진이 있는데 첨부를 하지 않았음)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하루키는 이부자리와 옷가지, 식기, 전기스탠드, 몇 권의 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재산의 전부였다. 그만큼 가난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은 지극히 간단해진다. 겨울에 해가 지면 하루키는 아내와 고양이를 안고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갔고 아침에 나오면 부엌의 싱크대가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가난이라는 불행 속에서도 봄이 오면 근사해져서 세 명(고양이 포함)이 나른한 봄볕에 작정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그 당시를, 우리는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고 햇볕은 공짜였다.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나 역시 가난이 칼바람처럼 부는 집에서 지냈다. 단칸방이라는 곳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없다. 하지만 어린이니까 복작거리는 곳이 재미있었다. 주인집이 좋아서 주인집의 형과 매일 놀 수 있어서 매일이 재미있는 나날이었다. 부모의 걱정과는 무관하게 마당에서 옆 집형과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칼싸움을 하고 밖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시간이 흘러 지금도 모친은 주인집 아주머니와 같이 계중을 한다. 세상에는 그런 인연이 존재한다. 불안하고 겁이 나는 삶에서 하루키의 이런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음 저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추억이 도란도란 피어올라 또 시간이 지나면 지금도 추억이 될 거야, 같은 마음을 먹게 해 준다.
오늘 같은 날(이 어떤 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어제와는 완연히 다른, 가을의 빛이 차단된, 10월이 바로 끝나버린)에 어울리는 음악을 한곡 선곡하면 look for the silver lining이다.
챗 베이커의 버전은 물에 불린 찰흙을 만지는 듯한 느낌의 곡이다. 쳇 베이커를 한 마디로 말하면 '약하디 약한 사람'이라고 소설가 김중혁이 말했는데 전적으로 동감. 그가 체내에 들이부은 약만 해도 아마 십만 명이 흡입한 양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는 약으로 약해진 인간이 되었다. 오만 떼만 여자들을 다 건드렸다. 게 중에는 친구의 딸도 있고,,, 그래도 이렇게 멋진 곡들을 많이 남겨 놓고 가서 쳇 베이커의 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환상과 현실의 중간지점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마치 오늘처럼. 어제와 오늘 그 중간의 엷은 막 같은 곳에 서 있는 기분.
모던 포크 콰르텟 버전은 몹시 신나고 흥겹다. 음악의 다양함과 질에 대해서 새삼 놀라게 된다. 노래는 접시를 닦는 인생이라도 행복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접시와 쟁반에서 빛이 날 때까지 당신을 하루하루를 갈고닦을 것이라고 한다. 정말 멋진 '시'다. 오전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서니사이드업을 만들면서 들으면 좋을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