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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04. 2020

나는 외모를 보지 않았는데

일상 에세이

나는 아직 싱글이고 지금까지 몇 명의 여자를 만났다. 내가 만난 여자들의 공통점이라면 전부 책을 좋아하고 대체로 서점 같은 곳에 같이 가고 책을 선물로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내쪽에서 보는 관점이라고 주위에서 말한다. 만난 여자들이 주위에서 주로 듣던 소리는 모델 같네, 연예인 같네, 미스코리아 출신인가?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나는 외모로 여자를 만나는 사람처럼 되었다.


외모로 여자를 만날 수는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만났던 여자들이 예뻤지만 그런 여자들이 나 같은 인간을 만날 이유는 없다. 사진관을 하니까, 손님이 없을 때는 보통 책을 읽고 있거나 글을 쓰고 있다. 컴퓨터 옆에는 책이 늘 몇 권 있고 그림이나 자작시를 액자로 만들어 진열을 해놓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만남이 이어지게 된다.


좀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자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사진부여서 그런지 여고생들과 늘 교류가 오고 갔다. 사진부라서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들어갈 글이나 글에 맞는 사진을 조합해서 학교 축제를 준비하기 때문에 여고의 문학부 애들이나 음악을 하는 애들과도 교류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는 늘 몰려다니고 머리를 맞대고 사진이나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사진부가 자주 가는 치킨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그곳에서도 늘 어울리고 하도 시끄럽게 떠들고 놀다가 주민 신고가 들어오기도 했다. 교류를 하는 여학교 중의 한 여학교 문학부의 그녀는 아주 콧대가 세고 자존심이 강했다. 키가 컸고 화장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잘했고, 이미 플루트나 피아노 같은 것도 잘 쳐서 연주회도 가졌다. 당시에 주성치를 좋아하는 나와는 다르게 소설 태백산맥과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어느 날 학교 문예지 때문에 만났다가 우리가 노는 식으로 데리고 다녔다. 주성치와 오맹달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깔깔깔 웃었고(주성치와 오맹달은 라면을 입으로 먹고 코로 나오게 했다), 음악감상실에서 시끄럽고 강렬한 엑스제팬의 히데의 노래와 메탈리카의 음악을 들려주었고, 저녁에는 중앙시장 곰장어 골목의 한 집 구석에서 곰장어에 소주를 먹였다. 그녀는 곰장어와 소주를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바이트, 그리고 울음, 콧물과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날리는 욕은 생략하겠다, 그리고 한탄, 그리고 한풀 꺾인 자존심으로 우리와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그녀는 학교의 모델을 하기도 했다.  


대학교 때는 자취를 했는데 의상과 애들과 식구처럼 지냈다. 한 방에서는 남녀가 어부에게 잡힌 물고기처럼 몸이 꺾여서 그대로 잠들고 다른 방에서는 아직도 열을 올리며 술을 마셨다. 게 중에는 뉴질랜드에서 온 여자 애가 있었는데 느닷없이 자취방 식구가 되더니 느닷없이 고백을 하는 것이다. 특별히 설레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이 모두가 아침에는 원초적인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고 부스스한 채로 아침을 먹을 놈은 먹고 학교로 갈 놈은 가고, 뭐 그런 식이었다.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서 (여자애가) 예쁘다, (남자애가) 잘생겼다,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가 갑자기 하루 안 보이게 되면 아르바이트로 의류 광고를 촬영하고 왔다. 그러면 그 사진들을 보며 우리들은 빙 둘러앉아 이게 너야? 정말 너야? 같은 말을 했다. 건축과의 모든 것이 다 나와 맞지 않고 싫었지만 또 모형 만드는 것은 좋아해서 학교에 남아서 거의 밤새도록 모형을 만들고 있으면 옆에서 그녀가,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를 읽어주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추억이 되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는 누나도 없고 남자중학교, 남자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어쩐지 여자애들과는 또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물론 이야기가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맞아서 그랬을 것이다. 


최근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독서모임도 한 일 년 정도 꾸려서 운영을 했다. 좀 웃긴 것은 회원들이 전부 여자들이었다. 회원들을 모집하는데 분명 남자들에게도 이런이런 모임이 있는데(까지 말을 꺼내려면 그 사람이 책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야 한다) 참석하라고 했다. 남자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는 여타 다른 것이 할 게 많다. 다른 독서모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론 안 그런 남자도 있겠지만 ) 남자들은 순수하게 독서만 하는 모임 그 이외의 것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적극적이지 않는 남자들은 받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적극적인 여자들만 모여들게 되어서 한 일 년을 열심히 서로 소설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닥쳤고 모임은 중지, 몇 개월 있으면 끝나겠지 했지만 지금까지 오고야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자들만 회원으로 받아야지, 하는 마음은 없었다는 것이다. 여자들도 그런 마음만 있는 남자가 하는 모임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를 만날 때 외모를 본다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동안 주위에서는 너는 모델 같은 여자들만 만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예전에 헤어디자이너를 만날 때 이야기다. 그녀는 지금 아마도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그녀도 책을 좋아했고 내가 쓴 글을 응원해주었다. 그때는 내가 글을 쓰면 그 글을 자신의 싸이월드에 퍼 날랐다. 나는 싸이월드를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열심히 그걸 했었고 내가 쓴 글 중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자신의 피드에 올리곤 했다.


그때 아버지가 쓰러졌고 낮에는 모친이 병간호를 하고 밤에는 내가 간호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만날 시간도 없고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나 밤새도록 아버지 옆에 있어야 해, 얼마 동안 그렇게 해야 될지 몰라, 그러니 깊어지기 전에 관두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녀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으니까 일단은 계속 만나보자고 했다. 그녀는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아서 나와의 만남이 뜸해지면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끈기가 있었다. 나는 낮에는 졸면서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병원으로 가서 모친의 바통을 이어받아 아버지 옆에 밤새 있었다. 간이침대에서 잠이 들었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잠깐씩 만나 밥도 먹고 책도 주고받고, 편의점에도 가곤 했다.


나는 그 당시에 긴 소설을 쓰고 싶어서 아버지가 잠들면 복도에서 소설을 조금씩 적었다. 생각보다 긴 소설이 될 것 같았다. 그녀는 물론 내가 소설을 적는 것에 응원을 해주었다. 병간호는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었다. 일단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데 나는 맨손으로 그것을 했다. 처음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했다가 불편해서 그냥 맨손으로 하게 되었다. 손에 묻은 것은 씻으면 되니까 오히려 더 나았다. 일하고, 소설 쓰고, 병원에서 쪽잠 자고, 이런 일이 길어지니까(길어진다고 해도 일 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 정신력이라는 것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러는 가운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시간이 흘러 집 안이 진정이 되고 다시 제자리를 잡아갔다. 나는 그러면서 더욱 시간이 나면 소설에 매달렸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그녀의 언니가 언니의 남자 친구가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오니까 같이 가서 인사를 드리고 결혼 승낙을 받자고 했다. 그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뭐랄까 왜 그런지 결혼 승낙을 받으면 결혼을 바로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정말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했다. 결혼을 하면 치열한 가정사를 돌보는 것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저 나 좋다고 내 멋대로 출퇴근하면서 글이나 쓰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면 쓰고 있는 이 긴 소설이 끊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만나는 건 안 가기로 했다.


그 후로 열심히 소설을 적었다. 전문적인 부분은 의사를 찾아다니고 전문서적을 뒤지고 읽어서 그 부분을 채웠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힘들었다. 카페에서 적고 심지어는 돼지국밥을 먹으면서도 적었다. 그녀가 옆에서 응원을 해주었다.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보니까 3년이 지나가 있었다. 소설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녀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서도 나 때문에 이런저런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뵙겠다고 했다.


집으로는 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부모님은 나에 대해서 마음이 닫힌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의 부모님이 일하는 곳에 내가 찾아가기로 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농산물 시장에서 배추를 판매하는 일을 했다.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 평생 일을 하신 분들이다. 찾아가서 무릎을 꿇으면 부모님의 마음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없는 정장을 어디서 빌려 입고 오후 4시에 농산물 시장에 찾아갔다. 손에는 꽃을 들고 한 껏 예의를 갖추고 정중하게 찾아갔다.


오후 4시의 농산물 시장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오고 가는 소리가 가득했다. 넓은 곳에서 가르쳐준 플레이스로 찾아가니 그녀의 부모님이 보였다. 그리고 터벅터벅 걸어가서 인사를 하고 무릎을 꿇고 그동안 못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라며 뒤의 이야기를 주절주절했다. 그만 일어나게, 여기서 이러면 곤란하네, 라며 나를 일으켜 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배추가 나의 얼굴로 날아들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농산물 시장에 있던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빠른 시간에 사람들이 왕창 모여들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딸의 미래를 망친 사람이라고 나를 가리켜 울면서 말했다.


그곳을 벗어나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좀 웃기지만 그냥 배추로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배추는 늘 김치로 봐왔기에 만약 배추가 김치였다면 온몸에,, 까지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리고 배추로 맞은 곳이 몹시 아팠다. 그곳에 나를 위해서 그녀의 남동생이 와 있었다. 그녀의 남동생은 태권도 사범으로 나를 몹시 따랐다. 동생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시간을 빼서 농산물 시장에 와 있다가 내가 배추로 맞으니까 나를 그곳에서 빼왔다. 어째서 나는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많이도 일어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 지금은 재미있게 그때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녀는 예뻤으니까 그녀를 닮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장미는 참 예쁘지만 가시가 있다. 그래서 향기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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