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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88

10장 4일째

288.


 이것이 세상이다. 마동은 소파에 앉아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막상 등을 기대고 앉으니 불편하지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소파였다. 소파는 소파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식으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마동이 등을 기대는 순간 마동 역시 장식의 일원으로 소파와 어울리는 것이다. 커피 잔과 커피 접시처럼.


 소파는 불편한 모습으로 마동에게 인사를 건넸고 불편한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했다. 마동은 빛바랜 나무색의 소파를 손바닥으로 한 번 훑었다. 인조가죽이 벗겨져 거칠한 감촉이 전해졌다. 마동은 등받이에서 등을 땐 다음 테이블 위의 장기알과 바둑판을 의미 없이 건드려보았다. 마동은 어젯밤 일을 떠올렸고 회사 생각을 했다. 1분 동안 회사 생각을 하다가 그만 두려는 찰나 는개의 얼굴이 나타났다.


 포니테일을 고수하는 실력파 여성. 나와 어디 하나 연결될 수 없는 여자.


 는개의 얼굴이 생생해질수록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이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희미한 얼굴 윤곽만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기억의 전부였다. 기이하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떠올리면 는개의 얼굴이 그 사이를 틈입했다. 는개가 건네주던 자양강장제와 어깨를 잡아주던 여린 손바닥의 떨림은 낯설지 않았다.


 설핏 손끝이 닿았을 때 느꼈던 그 강렬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매점의 50대 여성은 티브이에서 시선을 두었다가 마동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동과 티브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동에게서 돈을 지불하고 매점에서 무엇인가 사 먹을 분위기가 없자 이내 흥미가 떨어졌는지 티브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동은 남아있는 동전으로 운세 상자에서 운세가 담긴 종이를 뽑아냈다. 영화티켓 값을 치르고도 동전은 많았다. 종이를 계속 뽑았다. 이내 그 많던 주머니의 동전을 다 써버렸다. 금세 운세 상자는 묵직해졌다. 주머니 속의 동전이 운세 상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이동을 했다. 매점의 여성은 오늘 운세 상자에서 종이를 갈아대느라 기분이 좋을지도 모른다. 15분이 지나고 영화가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가 끝났다고 해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문을 열어준다거나 청소부가 들어와서 청소를 하는 일은 없었다.


 마동은 문을 열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힘을 줘야 했으며 문이 열리면서 끄응하는, 노인이 겨우 일어날 때 내는 소리를 냈다. 마동은 잘 느끼지 못했지만 극장은 그렇게 시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상영관의 복도 쪽 제일 마지막 줄에 고장 난 로봇처럼 고개가 뒤로 꺾여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30대인지 20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남자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서 일단 죽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실내가 덥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세계가 끝나는 날이 내일이라 할지라도 남자는 동시상영관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을 청할 것이다. 끝나는 세계를 맞이하는 방법 중에 괜찮은 방법이었다. 어둡고 더운 곳이 좀 더 어두워지고 뜨겁게 되는 것이 세계가 끝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매우 불편한 자세로 아기처럼 편안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남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양식이었다.


 마동은 적당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래된 극장이라 앉는 의자도 고대 유물처럼 오래되었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등받이는 자동으로 접히는 의자였다. 그나마 몇 개만 제대로 접이식 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대부분 의자는 스프링이 고장 나서 접히지 않는 상태였다.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보는데 인내와 체력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유적지에서나 볼 법한 극장 의자였다. 마동은 태어나기 전이지만 벤허 같은 대작을 상영할 때는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서 관객들이 화장실에 갔다 오도록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빵과 우유도 나누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성적이었구나. 예전에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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