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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87

10장 4일째

287.


 마동은 흥미가 일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전에는 동시 상영 극장이 여러 군데 있었다. 영화 하나가 끝이 나면 다음 영화가 시작되기 전 공백의 시간을 가진다. 그 시간이 기이한 극장이 동시 상영 극장이었다. 공백의 시간에 다음 상영할 영화를 기다리며 음식도 먹었지만 그것은 마동이 억지로 만들어 낸 기억이었다. 영화와 영화 사이의 공백의 시간은 기억이 났지만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자세한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영화가 끝나면 바로 다음 영화가 시작했을 것이다. 동시 상영을 하는 영화관의 건물에는 영화관에서 무슨 영화가 하는지 영화에 대한 안내간판은 붙어있지 않았다. 다만 입구에 상영하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요즘도 이런 포스터를 만들어 내는 곳이 있다는 것이 영화와 영화 사이의 공백보다 더 기이했다. 오래전처럼 페인트로 삼류 화가가 일일이 그려놓은 영화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지만 상영하는 영화의 간판을 손으로 직접 그렸다고 하니 해방 직후처럼 오래 전의 일 같았다. 마땅하지만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마동은 걸어 올라갔다. 마동이 싫어하지 않는 건물의 스타일이었다.


 오로지 계단을 통해서 오르는 건물.

 계단을 밟고 한 발 한 발 올라서야 꼭대기에 닿을 수 있는 건물.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청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계단의 끝 구석에는 지구에서 처음 보는 찌꺼기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계단 역시 한눈에 다 쓰고 소모되어 버린 60년대식 자동차의 엔진만큼 오래되었다. 미끄럼 방지 턱은 낡고 칙칙한 동물의 사체가 발하는 뼈의 색처럼 금색의 도금이 연약하게 빛났으며 방지 턱이 사라져 버린 계단도 보였다. 3층을 애써 오르니 코로 훅 들어오는 더러운 냄새가 났다. 이런 냄새는 겨울에는 잠잠한 냄새였다. 여름의 후텁지근하고 습한 대기에 섞여서 풍기는 불쾌하고 불길한 냄새였다. 4층의 계단으로 올라가니 상영하는 영화의 포스터가 상처 난 얼굴에 아무렇게나 바른 연고처럼 덕지덕지 붙어있고 예고편의 포스터도 불규칙적이게 복도의 벽에 붙어서 하나의 규범처럼 보였다. 마동은 무슨 영화가 상영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입구에서 표를 구입했다. 몽구스의 작은 입처럼 보이는 벌어진 구멍에서 누군가 귀찮다는 듯, 얼마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고 마동은 주머니에 있던, 버스기사에게 받은 잔돈을 모아서 표 값을 지불했다. 작은 입구에서 작은 표가 한 장 툭 나왔다. 역시 오래된 밥그릇처럼 보기 드문 영화티켓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온통 붉은색으로 두꺼운 솜이불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대기실에는 지구에서 아마도 처음 보는 소파가 보였고 소파 사이에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장기알과 바둑판이 있었고 동전을 밀어 넣어 운세를 알아보는 상자도 보였다. 대기실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있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동시 상영하는 영화를 돈을 지불하며 억지로 보려고 오는 사람은 이제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차를 타고 조금만 벗어나면 시설 좋은 대형 멀티플렉스가 있는데 어떤 이가 케이블티브이에서도 방영하지 않는 영화를 보려고 올 것인가. 바닷가에 인접한 마을이나 마을의 노인들이 시간이 나면 보러 올지도 몰랐지만 집집마다 50인치 이상의 대형 티브이를 구비해 놓은 집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선호는 집안에서 편안하게 대형 티브이를 보는 것으로 생활형태가 바뀌었다. 대한민국의 극장이라는 곳은 나이가 들어버리면 찾지 않게 되는 묘한 곳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피자를 멀리하는 경우와 같다.


 대기실 한 편의 작은 매점에서는 더 이상 흥미를 찾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아날로그 티브이 속에 시선을 고정한 50대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상단에 영화 시간표가 붙어있었다. 두 편의 영화 중 하나가 15분 후면 끝이 난다. 마동은 15분 후에 들어가서 나머지 한 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볼 요량으로 대기실의 소파에 앉았다. 극장 안의 대기실에는 에어컨은 없었다. 마동은 더위를 타지 않았지만 매점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50대 여성은 몹시 더워 보였다.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마동이 앉은 소파는 푹신하게 쿠션이 꺼졌지만 불편한 소파였다. 어딘지 소파를 만들어내는 공장에서 불량품으로 만들어진 소파를 구해서 이 극장의 홀에 가져다 놓은 듯했다.


 푹. 신. 하. 지. 만. 불. 편. 한. 소. 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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