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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86

10장 4일째

286.


 사람들은 무더위 속 각자의 일터에서 소박하거나 열정적이게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물에 불은 신문지처럼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초초히 저 거리로 몰려나오는 모습이 마동의 눈에 보였다. 버스는 그곳을 벗어나서 인적이 드문 산길로 오르는 오르막 도로에 접어들었다. 왕복 이차선의 도로는 엑스자로 구불구불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은 버스가 코너를 돌 때마다 꺄악 하는 재미 섞인 신음을 토해냈다. 노인은 의자의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었고 서있는 사람들도 잡고 있는 버스의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창문을 조금 열면 풀 향으로 가득 차서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풀 향과 더불어 무더위의 습한 기운도 버스 밖에서 창문을 여는 동시에 안으로 밀려들어와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것이라 마동은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동은 어린 시절의 풀냄새를 잊지 않았다. 여름에 풍기는 풀냄새는 코가 기억하고 있었고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버스 안의 에어컨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지 못해서 여학생들은 코너를 돌 때마다 에너지를 소비해서 자신의 얼굴에 부채질을 하거나 친구의 얼굴에 공책으로 부채질을 해주었다. 노인도 목 부분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훔쳐냈다. 버스는 여러 번 나오는 구불구불한 에스자형 오르막길을 지나 버스의 양쪽이 밭으로 보이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보이는 양쪽의 밭은 풋고추 밭이었다. 뜨거운 태양의 자양분을 먹고 고추는 더욱 푸르게 익어 갈 것이다. 아스콘이 깔린 도로에서 곧 비포장도로가 이어졌다. 버스는 죽 이어진 도로를 따라서 30분을 더 달려 어촌의 마을로 관통하여 바다가 보이는 한 정류장에 정차를 했다. 버스가 정차를 하고 엔진 소리가 완전하게 꺼졌고 마동도 종점에서 내렸다. 처음 와보는 곳은 다큐멘터리 속에나 나오는 외딴곳으로 낯설었다. 무덥고 짠 내 나는 바람이 불어와서 마동의 얼굴을 할퀴었다. 날 것의 바다 냄새였다. 마동은 버스에서 내려 작은 어촌 마을의 오후를 거닐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변이가 시작되고 배가 고프다는 감각에서 멀어졌다. 혹여 배가 고프다 하더라도 마을에는 식당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먹은 것이라곤 병원에서 마신 주스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전혀 허기나 공복감이 들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 먹지 못한다면 말라죽어 버릴지도 몰라.


 왓킨스와 블라디미르가 말라서 죽은 모습을 마동은 상상했다. 한참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다.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들의 운행이 도로에서 잠깐 보였고 도로 건너편 저 멀리 높지 않은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마동은 그곳으로 걸어갔다. 건물들이 모두 낡고 오래되어서 늙어 힘을 잃은 호랑이의 모습처럼 보였다. 바다의 해풍과 짠 내를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은 몸으로 그 모든 걸 받아냈다. 오래전에 바다에 인접한 이 마을에 건물들이 지어졌을 때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 사람들은 건물을 외면한 듯 보였다.


 그중 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높이는 5, 6층 정도의 높이였다. 자칫 노출 콘크리트 양식을 본 딴 건물로 착각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오래되어서 페인트칠이 전부 벗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축이나 증축을 통해서 좀 더 나은 건물로 유지 보수될 수 있으나 건물주는 포기하고 마을은 건물을 방치해버렸다.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이 심각하게 보였고 꽃처럼 퍼진 크랙 부분에만 몇 번이나 페인트를 칠했는지 어린이의 그림 솜씨처럼 형편없었다. 건물의 벽면은 내일이면 숨이 멎을 노파의 피부처럼 푸석했다. 올려다보니 4층에 극장이 있었다.


 극장?


 5, 6층은 사용하지 않았다. 텅 비어 있었고 건물 입구에서 4층은 동시 상영하는 극장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동시 상영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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