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4일째 저녁
298.
부웅.
길어져 버린 해무를 알리는 등대의 소리에 맞춰 뱃고동이 울리고 해무는 짙음을 더해갔다. 빠끔하게 붙어있는 횟감을 판매하는 곳도 대부분 철수하고 몇 집 밖에 장사를 하지 않았다. 는개와 함께 횟감을 보며 걸어가니 골목의 끝이 나왔고 그 끝은 바다로 이어지고 철썩철썩하며 어두운 밤의 바다가 부딪히는 소리가 시간의 저편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처절하게 들렸다.
“찾고 있는 고기가 없는 모양인데 광어나 우럭을 사는 게 어때? 일반적인 것이 가장 바람직할 때가 있는데 말이야.”
“당신, 정말 재미없게 말하는 덴 일가견이 있군요. 흥”라며 는개가 웃었다.
“네, 찾고 있는 횟감이 있어요. 찾아내고 말 거예요. 제가 맛있는 회를 먹도록 해 드릴게요.” 부드럽지만 단호한 그녀의 말투였다.
“이곳에서 회를 구입해서 가져가서 먹는 게 아니었어?”라는 마동의 질문에 는개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마동은 어째서?라는 의아한 눈빛으로 는개를 바라보았다. 는개는 수족관에 둔 시선을 돌려 마동을 보더니 자신에게 맡겨보라는 말을 했고 마동의 팔꿈치를 잡고 이끌었다. 마동은 그녀와의 접촉이 있을 때 또다시 무엇인가 느껴지지 않을까 했지만 아무런 전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흠.
“여기서 회를 구입해 가져 가서 먹으면 늘 먹던 맛과 같은 맛이잖아요. 오늘은 다른 맛을 보여드릴게요.”
다른 회 맛이라. 맙소사.
마동은 이미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언어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난감했다. 마동과 는개는 꽤 넓은 수산시장에 있는 횟집을 대부분 돌아다녔다. 마동은 수산시장이 이렇게 넓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해무가 가득 들어찬 수산시장에서 활기찬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몇몇 횟집 주인들은 그 속에서 삶의 어떤 무엇인가를 찾아서 전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치열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마동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다양한 삶과 하나의 죽음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짠 내 나는 해무 속 그 하나하나의 삶이 모여들어서 비로소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그 문명 속에는 의사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고 의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명이란 대단한 사람 몇 명이 모여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개미처럼 작은 개개인의 하루하루와 그 속에서 꿈틀대는 인간의 태동과 생각의 움직임이 쌓이고 집적이라는 관념이 만들어낸 거대한 공동체가 문명을 이루고 문명은 먼 후세들에게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문명 속에서는 지금 옆에서 진지하게 횟감을 찾는 는개도 포함되어있고 꺼져가는 마동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는개의 휴대전화에서 벨이 울렸다. 벨 소리는‘문 리버’였다. 그녀는 알았다며 조금 전에 지나쳤던 횟집으로 마동을 이끌고 다시 갔다. 힐을 신고 물웅덩이를 피해 수산시장의 바닥을 잘도 걸어 나갔다. 는개의 모습은 아마조네스의 모습처럼 질척이고 척박한 악마의 소굴을 헤쳐 나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숙달된 모습 같았는지 마동은 는개의 손에 잡혀 따라가면서도 몇 번이나 물웅덩이에 신발이 빠졌다. 두 사람이 도착한 횟집은 이십 분 전에 들렀던 횟집으로 는개에게 찾는 물고기가 이삼십 분 정도면 도착할지도 모르니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었고 물고기가 도착을 해서 연락이 온 것이다. 마동은 전혀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