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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8. 2020

된장국이 된장찌개보다 좋아

음식 에세이



내 주위 모두가 두부와 목살이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를 좋아하지만 나는 된장국을 더 좋아한다. 된장국에 두부 정도는 괜찮지만 고기는 별로다. 된장국에 고기가 들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형이상학적인 된장국에서 멀어지게 된다. 시래기와 된장만으로 된 뜨거운 된장국을 마시고 나면 시원한 바다의 맛도 나고 실루엣이 펼쳐진 들판의 탁 트이는 기분도 든다. 그렇다고 하지만 고기가 있으면 넣어서 된장국을 먹기도 한다. 


된장국은 된장과 한없이 데쳐지고 데쳐진 배추가 입 안에서 허물어지는 된장국이 가히 최고다. 뜨겁게 해서 호로록 마시는 된장국, 그게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된장국이다. 


꼭 겨울에 어울릴 필요는 없지만 겨울에는 역시 된장국이다. 된장찌개는 더운 날에 먹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지만 된장국은 겨울에, 길거리 리어카의 어묵 국물처럼 후루룩 하며 속을 한 번에 데워주는 게 겨울에 딱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된장찌개와는 멀어지고 된장국과 친밀하게 지낸다. 된장찌개와 된장국은 무슨 차이가 나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이가 크다. 찌개와 국은 글자부터 완전히 다르니까. 


짜장면과 간짜장 정도의 차이일까. 된장찌개가 간짜장이고 된장국은 짜장면이라면 그냥 짜장면이 간짜장보다 더 맛있을 때가 있다. 된장국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푹 데쳐진 시래기다. 시래기를 입 안에 넣는 순간 그래, 이 추운 날에도 괜찮아, 그러니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위로가 된다.  


겨울에 이렇게 된장국을 찾는 이유는 지금(도 그렇지만) 보다 더 내세울 것 없고 무척 힘들었던 시기에 추운 밤에도 지새워야 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때 오들오들 떨면서 작업을 할 때 보온병에 담아온 된장국을 호로록 거리며 냉철한 추위를 이겨냈다. 분명 오늘 밤 안으로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데, 그래서 거래하는 곳이 사라질 것 같은데 보온병의 된장국이 바닥을 보일 때쯤이면 어느새 작업이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아마 그 겨울에 커피를 그렇게 마시면서 작업을 했다면 몸에 무리가 왔을지도 모르고 술이라면 작업을 하다가 내팽개치고 그대로 달아나버렸을지도 모른다. 


김밥으로 한창 끼니를 때울 때 상가마다 돌아다니며 김밥을 파는 할머니에게 매일 사 먹었던 적이 있다. 그때 겨울이면 할머니는 보온병에 담아온 된장국을 종이컵에 한 컵 부어주었다. 된장국과 함께 먹는 김밥은 그렇지 않은 김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김밥 한 줄을 더 먹어야 된장국을 한 컵 더 주었다. 그래서 얄미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써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47

물론 허구라는 조미료가 좀 들어갔지만. 


된장국은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심리적인 안정은 일상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약해질 때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 그 불안정한 기간이 길어지고 깊어지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나처럼 불안을 잔뜩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이라는 것은 몹시도 중요한 문제다. 된장국 정도에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은 덜 불행하게 죽 이어질 수 있다. 뜨거운 된장국을 한 그릇 그대로 몸에 넣어서 속이 뜨거워졌다면 이제는 밥을 말아서 위로를 받을 차례다. 된장국은 그런 존재니까. 우리 삶에서 위로를 주는 것들은 된장국처럼 늘 곁에 있어서 잘 몰랐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땡초를 넣고 밥을 말아서 후루룩



또 다른 버전. 된장과 시래기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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