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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97

11장 4일째 저녁

297.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택시 안에서 들리는 다른 소리마저 잠식했다.


 “제가 드린 질문의 답인 가요?”


 “질문이 뭐였지?”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보면서 웃었다. 마동이 멋쩍게 따라 웃으려 했다.


 는개는 택시기사에게 남은 거리를 물었고 마동과 는개의 안톤 체호프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바다와 인접해 있는 수산시장의 여름밤은 방 안에서 피워대는 담배연기 같은 짙은 해무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수산시장에 사람들은 많이 않았으며 수산시장 가득, 바다에서 불어오는 짠 내 나는 해무가 들어차 사람들의 표정을 더욱 무표정하게 만들었다. 해무는 공기보다 무거운지 수산시장의 바닥에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그 사이를 지나가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이가 해무를 향해 손을 휙 저으면 해무는 마치 귀찮아, 하며 대기에 잠시 떴다가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가라앉았다.


 수산시장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는 고깃배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수증기가 막을 형성해서 바다 저곳까지는 보이지 않았고 철썩하는 파도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수산시장 길거리 군데군데 고여 있는 물고기 비린내가 가득한 물웅덩이에 발을 빠뜨려 입에서 나오는 누군가의 욕이 들리기도 했다. 뿌연 해무가 가득한 수산시장에서도 저 멀리 마른번개의 모습이 보였다. 마동은 마른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을 눈에 새겼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짠 내는 미역의 말캉한 냄새도 같이 몰고 와서 마동과 는개의 코 안으로 쑥 들어갔다. 해변에서 조금밖에 벗어나지 않은 수산시장인데 사람들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여름은 어제와 다르게 더욱 무겁고 뜨거운 불볕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여름이라는 계절만 더욱 깊어지다가 세계가 끝날 것만 같았다. 정박해 놓은 고깃배가 파도에 끌려 부둣가에 매달린 타이어에 부딪혀 쓸리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고 뜨문뜨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회를 팔려고 소리 높여 호객행위를 하는 횟집 주인들의 소리가 수산시장의 밤하늘에 올리고 있었다.


 는개는 이런 곳에 어울리는 복장은 아니었지만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해무 속을 잘 비집고 걸었다. 실험용 미로에서 길을 찾아가는 지능이 있는 마우스처럼 는개는 물웅덩이에 한 번 빠지지도 않고 수산시장을 걸어 다녔다. 마동은 그런 는개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마동은 그녀가 걸어갈 때마다 한 발짝 뒤에서 따라 걸었다. 해무가 가득 낀 수산시장에서 날렵하게 걷는 그녀의 뒤에서 속도를 맞춰가며 걷는 행위가 조금은 우습게 보였다.


 부둣가로 나 있는 작은 길에는 양옆으로 해산물 코너가 붙어 있었고 아직 해산물과 횟감을 다 팔지 못하고 남은 아주머니들이 레드카펫을 걷듯 거니는 소수의 사람들을 보며 손을 뻗어 호객행위가 한창이었다. 그들이 팔고 있는 대야 속에는 개불도 보이고 멍게와 해삼도 보이고 각종 어류와 작은 상어도 보였다. 마동과 그녀가 그 길을 지나치니 양 옆에서 깎아주겠다며 경쟁구도가 치열했다. 어떤 이가 오징어를 집어 드니 오징어는 위협을 느끼고 공중에서 항문부 등면의 먹물주머니에서 한줄기 먹물을 뿜어냈고 오징어를 손으로 잡은 이는 오징어가 싱싱하다고 마동과 는개에게 말했다.


 는개는 그 사람들 사이와 횟집의 수족관을 일일이 보며 돌아다는 것을 보니 따로 찾는 횟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횟집의 수족관 속에 들어 있는 물고기는 언제 생명이 끝날 것을 아는지 모른 숨을 내쉬며 수족관의 벽이나 바닥에 적요하게 붙어있었다. 스트레스가 심한지 물고기는 똥을 싸고 그것을 다시 주워 먹어가며 수족관에서 생명이 꺼져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기호스에 의해서 물고기들의 생명은 기껏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렇게 마지못해 살고 있으니 어서 잡아서 먹어달라는, 위기감도 절망도 아닌 눈빛을 띠고 있었다.


 는개는 길거리에서 횟감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또는 여러 군데의 횟집에 들러서 찾고 있는 물고기의 이름을 말하고 횟집의 주인은 고개를 흔들었고 는개는 또 다른 횟집으로 지치지 않고 걸어갔다. 횟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를 전부 들어가 봤지만 는개가 원하는 횟감은 없었고 그대로 나오면 주인들의 표정은 데면데면했다. 는개는 그곳을 나와서 다른 횟집이 죽 늘어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수산시장의 부둣가 쪽은 이런 횟감 골목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길바닥의 양옆으로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코너가 붙어있고 그 코너 속에서 할머니들이 한 사람씩 들어앉아있었다. 할머니들은 사람이 지나가면 횟감을 흥정하는 추임새를 던졌다. 이렇게 길바닥에 앉아서 팔고 있는 횟집의 코너 안에는 해산물을 바로 먹을 수 있게 간이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곳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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