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4일째 저녁
306.
“이때 칼을 너무 세워서도 안 돼요. 그렇다고 너무 뉘이게 되면 살점에 로스가 나요. 그러니 칼을 수평으로 뉘이면서 칼날 방향은 살짝 아래로 향하게 하여 척추 뼈를 충분히 칼을 통해 손끝의 감촉으로 느끼며 오려낸다고 봐야죠.”
죽음의 두려움은 점점 구체화된 자괴감으로 그리고 자괴감은 자기 괴멸의 모습으로 심연 속에서 끓는 물처럼 끓어올랐다. 는개를 만나고 나서 드는 두려움은 서서히 커지기 시작하더니 마동의 여러 부분을 잠식하려 했다.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10킬로그램의 바벨이 양쪽 어깨에 하나씩 올려진 느낌이 들었다. 잘못 들어온 양수 속에서 변질되어가는 태아가 서툰 모양새로 잉태하는 것처럼 이질적인 감촉을 두른 채 수면 밖으로 올라왔다.
“이제 뼈에서 살을 발라낸 다음 포를 분리시켜야 해요. 반대편도 똑같은 방법으로 하구요. 자 보여요?”
는개는 요리 방송을 하는 전문 요리사처럼 마동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마동의 집으로 들어와서 여름 재킷을 벗고 실내화를 신고 하얀색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을 씻고 횟감을 다듬었다. 하얀색 블라우스의 단추 사이로 그녀의 가슴골은 시원하게 드러났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 덕분에 그녀의 목과 귀가 자세하게 보였다. 점 같은 귀걸이가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유물이 되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는개의 나이는 분간되지 않았다. 늘 그것이 신기했다. 26살처럼 보이지도 않았지만 36살이나 16살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비슷한 모습이지만 늘 다르게 보이는 묘한 모습을 지녔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에서 살아서 움직일 것 같은 콧대가 보였다. 회사에서 선뜻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녀였지만 지금의 모습은 바구니에서 꺼낸 아기처럼 안아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여자에게서 슬픈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불운한 냄새를 풍기는 쥐돔은 싱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쥐돔이 분리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는개의 손끝에서 나오는 슬픈 분위기를 느끼면서 마동의 머릿속은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이 응축되어서 암울한 덩어리로 쑥쑥 불거져 나왔다. 암울한 덩어리는 ‘증오’로 둘러싸여 있었다. 증오로 가득 찬 덩어리가 마동의 몸속 내장을 천천히 꾹 누르며 괴롭혔다. 마동의 뇌를 통해 증오의 덩어리가 썩어가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쥐돔과 아홉동가리가 칼질에 의해서 분리될수록 오래전 대기에 흩뿌려졌던 피 비린내가 거실과 주방에 확 퍼졌다. 마동은 머리를 더욱 세차게 흔들었다.
“이젠 갈빗대를 제거하구요.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살이 많이 떨어져 나가네요. 이제 껍질을 벗겨내야 해요. 등살과 뱃살을 분리하지 않고 그냥 통째로 벗겨 낼 거예요. 꼬리 쪽 살을 아주 살짝 잘라 칼이 들어가게 하는 걸 보여드릴게요. 자 이렇게, 그런 다음에 껍질을 벗겨내는 거예요.”
마동은 이제 는개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말은 마동의 앞까지 와서 믹서에 갈린 채소처럼 와그작 갈려버렸다.
“나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올게.” 마동은 빠르게 일어나서 욕실로 갔다.
거울로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날조된 얼굴이 있었다. 얼굴의 군데군데 실핏줄이 파랗게 올라와 있었고 눈동자가 오드아이처럼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겁이 날 만큼 달랐다. 거울의 상 그 안쪽에 있는 마동은 환멸에 찌들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환멸인지 어디에서 온 환멸인지 몰라도 단작스럽기만 했다. 그저 권태 속에서 깨어난 밑바닥의 환멸은 아니었다. 증오가 쌓이고 쌓여 거세고 드센 암흑의 흐름과 물살을 가르고 가열차게 올라온, 몹시도 다라운 환멸이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껴왔던 환멸이 아니었다. 권태 이면에 붙어있던 증오의 군락이 모여서 형성된 것들이었다. 마동의 마음속에서 기생하던 이드가 만들어낸 환멸이었다. 그것은 고독하고 손바닥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암흑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소리치며 몸부림쳤다. 환멸은 끈적이는 액을 뿜어내는 괄태충의 모양으로 암흑 속에서 오싹한 신음을 토하며 나오려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