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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2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10

11장 4일째 저녁

310.


 “스타일이요?”


 “그래, 스타일의 문제지. 성격은 개조가 가능해. 모난 성격은 둥글게 변할 수 있고 이기적인 천성은 이타적으로 바뀔 수 있는데 스타일은 개조가 안 되는 거야.”


 “어째서죠?”


 “어째서일까. 스타일은 사람들에게 자주 내비치지 않으니까. 지적을 자주 받기도 힘들고, 넌 왜 안 그러다가 저 사람만 나타나면 그런 행동을 하더라, 같은 스타일이 나타나는 거야.”


 는개는 마동의 말을 듣고 조금 생각에 빠지는 거 같았다. 그리고 “엉터리”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지. 는개는 애인을 두고 왜 나처럼 재미없는 사람과 있으면서 행복해하는 거지?”


 “당신 정말 바보군요. 애인이 있다면 당신 집에 오지 않았겠죠. 그리고 보통 애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요. 우연하게 이만큼의 행복을 안겨다 준 다음 점차적으로 조금씩 행복을 깎아 갈 뿐이죠.”


 “음.”


 “행복이라는 건 괴테 같은 거예요. 우리가 모르는 종류의 행복이 있어요. 전 그 행복을 찾은 거예요. 일반적인 행복에서 벗어난 행복 말이에요.”


 괴테 같은 행복.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행복이 있지만 행복은 대부분 엇비슷할 줄 알았다. 괴테 같은 행복이란 어떤 행복일까.


 는개는 진정 행복한 얼굴을 하고 와인 잔을 비웠다. 불이 자두 색으로 물들었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는개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회식에서 그녀에게 날아오는 술잔은 정중하게 거절했고 사람들은 응당 받아들였다. 는개가 입은 마동의 티셔츠는 헐렁해서 브이 네크라인으로 그녀의 가슴골이 드러났고 고개를 숙일 때마다 가슴의 언저리 부분이 보였다. 브래지어는 욕실에 두고 나온 모양이었다. 덜 마른 머리를 풀고 화장기 없는 얼굴은 볼수록 회사에서 봐온 박. 는. 개. 의 모습에서 벗어났다. 찬란한 웃음을 계속 보였고 그 사이사이에 잔존한 슬픔도 비쳤다.


 는개는 어떤 비밀을 가슴속에 담고 있는 것일까. 나와 손가락이 스쳤을 때 포효했던 세상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는개는 나에게 필시 전달사항이 있어서 왔을 것이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마동은 는개의 만개한 꽃과 같은 모습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지금 이런 순간은 누구나, 여성이면 꿈꾸는 거예요. 환상으로 끝이 나느냐 아니면 지속적으로 이어지느냐 그건 당신에게 달린 거라구요.”


 마동은 는개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이렇게 멋진 여자가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마동은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매력적인 는개에게 어떤 호감을 불러일으켰을까. 하고 2초 동안 생각해봤지만 어두운 먹지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제가 뭐 하나 보여드릴까요?”


 는개는 자신의 주위에 얌전하게 가라앉아있던 빛의 소자들을 흐트러뜨리면서 일어나 그녀의 가방이 있는 소파에 가서 가방 안을 뒤져 무엇인가 들고 왔다. 는개가 손에 쥐고 들고 온 것은 작은 사진첩이었다. 그 사진첩에서 는개는 자신의 증명사진을 꺼내 마동에게 보여주었다. 증명사진의 뒷면에는 학생의 글씨체로 언제 찍었는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증명사진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생활기록부에 붙여야 하는 사진을 시작으로 일 년에 한 번씩 필요에 의해서 촬영을 했다며 그녀는 여러 장의 증명사진을 펼쳤다. 중학생인 는개도 빼어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와 2학년 때의 모습은 엇비슷했다. 그런데 2학년 때와 3학년 때의 얼굴은 비슷했지만 분위기가 확 달랐다. 갑자기 커버린 느낌이 강했다. 성숙한 면모가 1년 사이에 얼굴에 두드러졌다. 그리고 슬픈 기운도 1년 사이에 얼굴에 더 짙어졌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성숙된 변화가 아니었다. 마동의 눈에 들어오는 증명사진 속 는개의 슬픈 변화는 확실한 것이었다. 회를 다듬던 그녀의 긴 손가락의 움직임에서, 머리를 푼 얼굴의 옆모습에서 언뜻 보이던 슬픈 기운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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