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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09

11장 4일째 저녁

309.


 “알아요, 머리를 풀어서 얼굴을 가리면 더 예쁘다는 걸.” 그녀는 소리를 내서 웃었다.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다. 입가에 주름이 기분 좋았다.


 “누군가에게 얼굴을 보여줘야 했어요. 그 사람은 저를 못 알아보고 있었죠. 그래서 작정하고 얼굴을 드러내 놓고 다니게 되었어요.”


 “회사에 그런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구지? 궁금하군.”


 “글쎄요. 누구일까요.”


 마동은 눈동자를 위로 올려 누구일까 생각했다. 는개가 웃었다. 이 집에 들어오고 자주 웃었다. 회사에서 짓는 웃음과 질이 달랐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래서 웃음이 더 값져 보였다.


 “주방을 보니 집에서 밥을 잘 챙겨 드시는가 봐요. 요리해 먹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요리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성 안에서 해결을 하는 거야. 실제로 저녁만 집에서 먹을 뿐이지. 저녁이라도 챙겨 먹자고 하게 된 거지. 아침엔 매일 가는 던킨도넛에서 커피와 도넛을 먹거나 샌드위치 전문점에서 세트메뉴를 먹고 출근해.”


 “그렇군요. 그런데 어쩐지 주방의 식품들이 삼 일 전부터 딱 멈춰! 그런 느낌인걸요.”


 “바로 그래. 감기가 독해서 삼 일 전부터 챙겨 먹지 못하고 있었어.”


 그녀는 웃으며 양손으로 자신의 작품을 내 보이며 이제 먹자고 했다. 는개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얇고 긴 싸구려 와인 잔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에 닿은 싸구려 와인 잔은 더 이상 싸구려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쥐돔을 가리키며 마동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마동은 56가지의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여기저기를 쑤셨다. 그래도 쥐돔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한입 먹었다. 쥐돔은 기름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물고기에도 기름이 이렇게나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을 마동은 처음 알았다. 마동의 걱정과는 달리 쥐돔의 회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거부반응이 없었다. 부담감도 덜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녀는 회를 간장에 살짝 찍어서 작은 입으로 가져가서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여기 이거 아홉 동가리도 먹어봐요. 씹는 맛이 제대로 날 거예요.”


 그녀가 그렇다면 그럴 것이다. 마동은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앞으로 더 알고 싶은 부분이었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


 는개는 마동에게 자신의 와인 잔을 내밀었다. 마동은 그녀의 와인 잔에 자신의 와인 잔을 부딪혔다. 어떠한 의식 같았다. 아스카 문명의 왕족들이 왕족의 시체 앞에서 행하는 의식처럼 경건하게 두 사람은 와인 잔을 부딪쳤다. 청아하지 않는 소리가 땡 하며 들렸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저 지금 굉장히 행복한 거 알아요?”


 는개는 나 같은 인간과 같이 있는데 어째서 행복하다고 느낄까.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는데.


 마동은 그 생각에 한숨이 깊어졌다.


 “바보같이 그런 표정은 짓지 말아요. 당신도 조금 웃어봐요. 회식자리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도통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요.”


 “억지로 하면 더 이상하게만 보여.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야.” 마동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흥, 하는 소리가 맞은편에서 들렸다.


 “이건 성격이나 천성의 문제가 아니야. 스타일의 문제라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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