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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9. 2020

컵라면의 기억

음식 에세이


처음 컵라면을 먹었던 게 언제일까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이전은 기억이 없다. 컵라면 하면 초등학생 때 겨울이 많이 떠오른다. 오늘 지금처럼 몹시도 추운 겨울날. 창을 사이에 두고 창밖은 냉혈한 차가움이 기세를 펼치고 있고 창 안쪽은 그 기세가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 따뜻한 교실에서 컵라면을 먹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게 뒤죽박죽이라 막 섞여있다. 또 초등학생일 때 컵라면의 기억을 떠올리면 겨울의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먹던 게 생각난다. 교실에서 후후 불며 컵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교실 곳곳에는 미숙한 손길을 탄 크리스마스 장식이 주렁주렁 걸려있고 빛을 받아서 반짝반짝거렸다. 그런 컵라면의 시간을 겨울에 왕왕가진 기억은 있다.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인가, 담임의 이름은 송선숙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이 3학년의 담임이었는지 4학년의 담임이었는지 역시 기억은 없다. 겨울의 교실에 패치카가 있었는지 난로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애매하다. 편의상 패치카도 있고 난로도 있었다고 하자.

선생님과 나는 난로 앞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었다. 라디오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수업이 다 끝나고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갔는 모양이다. 아니면 몇몇은 나와 함께 난로 앞에서 같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디오에서는 맨하탄스의 '키스 엔 세이 굿바이'가 흐르고 있었다. 이 역시 확실지 않다. 어떻든 겨울의 교실에 라디오(선생님의)가 음악을 토해내고 있었다. 맨하탄스의 목소리, 맨하탄스의 노래는 겨울에 제격이다. 쨍하고 맑고 차가운 겨울날보다 흐리고 잿빛 구름이 온통 하늘을 차지하는 날에 어울린다. 키스만 하고 떠나는 그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 어렸던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알지 못했다. 


교실의 창밖으로 해가 떠 있지만 겨울의 날이라 몹시도 추웠다. 운동장을 다니는 아이들은 전부 볼이 발갛게 변해서 몸을 움츠리고 다녔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이 한 두 명쯤 있을 법도 한데 아무도 이 추위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로런스 라우리의 그림 속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산업혁명 당시 사람들처럼 보였다. 


추위는 창을 뚫지 못했고 따뜻한 햇빛만이 창을 투과하여 교실 안으로 녹아들었다. 창가의 패치카 옆에 앉아 있었다면 노곤하여 힘 빠진 닭처럼 꾸벅꾸벅 졸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털옷을 입고 있었다. 목을 덮는 그런 털스웨터였다. 얼굴은 메릴 스트립의 젊은 모습과 닮았다. 말투에 농담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음의 진폭이 크지 않아서 말을 하고 있으면 무서운 사감의 모습처럼 보였다. 자주 만나는 이모보다 가끔 만나는 잘 사는 집의 고모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크게 웃는 법도 없었지만 무표정한 얼굴도 아니었다. 늘 아주 조금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훈련을 받은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잠이 들어도 그 표정으로 잠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나를 자주 나머지 공부를 시켰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성적이 좋지 못하면 선생님은 늘 나를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성적이 좋지 못한 나 같은 아이가 있기에 1등도 있을 수 있는데 선생님은 모두가 1등에 가깝게 성적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이였을 때는 말을 안 들었던 모양이다. 이쪽으로 가라고 하면 저쪽으로 가고 앉으라고 하면 어김없이 일어나버리고 조용하라고 하면 시끄럽게 굴었다. 무슨 말썽을 피웠는지 기억은 없지만 교장실에 불려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말썽을 피웠다기보다 같이 있던 아이들이 피우는 말썽에 내가 그만 접합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는 이유인지 교장실에 까지 불려 갔었다. 

그런 말썽은 중학교 때까지 이어지다 남들 다 하는 사춘기의 방황이 시작될 무렵 조용하게 사라져서 사춘기의 방황 따위 없이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 담임은 나를 교장실에서 빼와서 주로 교실에 남겨두고 훈계를 하거나 종아리를 때리거나 했다. 그리고 난로 옆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는 담임의 보조를 시켰다. 깁스를 한 채로 뜨개실을 잡아 주거나 했다. 어느 날은 겉옷을 벗겨 내복만 입은 채 교실에서 두 손을 들고 있게 했다. 도무지 무슨 말썽을 피웠기에 나는 겉옷이 벗겨진 채 내복만 입고 교실에서 벌을 쓰고 있었을까. 그때의 선생님은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빌런처럼 보였다. 

그런 나머지 교실은, 그리고 방과 후 교실의 분위기는 호러블 하게 다가와야 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송선숙 선생님은 점심을 먹어야 한다며 컵라면 두 개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하나는 나에게 주었다. 선생님은 긴 손가락으로 계란을 하나 깨서 내 컵라면에 넣어 주었다.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서 컵라면이 익어가기를 바라며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톤이 일정한 농담이 없는 이야기가 기억이 날리 없다. 하지만 선생님이 컵라면에 계란을 올려주며 저어 먹으면 맛있으니까 많이 먹으라고 한 말은 떠오른다. 그러면서 컵라면의 뚜껑을 걷어주었다.

냄새가 확 올라오면서 허기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선생님은 계란을 잘 저으라고 했다. 나는 젓가락으로 계란을 저어서 컵라면의 국물이 약간 탁하게 되었을 때 국물을 조금 마셨다. 계란이 풀어진 라면 국물의 맛이 입 안으로 확 들어올 때 따뜻한 겨울의 맛을 느꼈다. 컵라면 안에 익은 후레이크가 맛있었다. 초등학생 때 먹은 컵라면의 기억에는 후레이크의 맛도 분명하게 있었다. 후레이크가 맛있다고 하니 선생님은 숟가락으로 자신의 컵라면 속의 후레이크를 떠서 나에게 주었다. 후루룩 쩝쩝 먹던 나에 비해 선생님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라면을 먹었다. 그때 선생님은 한 번 크게 활짝 웃었다. 아니 웃어주었다. 아마도 후레이크가 맛있다고 하는 내가 재미있었던 걸까.

열기가 올라오는 난로 옆에서 컵라면을 후루룩 먹고 있으면 겉옷은 벗게 된다. 선생님은 싸온 보온 도시락을 열어 밥을 말아 주었다. 계란의 맛이 남아있는 컵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게 맛있어서 그 뒤로 몇 번은 선생님과 난로 앞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었다. 달걀을 하나 깨트려 넣은, 국물이 뽀얗게 탁해지는 뜨거운 컵라면은 겨울에 딱 이었다. 어쩐 일인지 선생님은 달걀을 넣지 않았다. 날달걀을 그대로 컵라면에 넣어서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다른 반의 담임이 지나가다가 들어와서 내 컵라면을 한 젓가락 뺏어 먹었다. 계란도 풀어졌고 너무 맛있게 보인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나머지 공부를 하던 나를 공부 못한다고 나무랐다. 그때 송선숙 선생님이 그 선생님에게 조근조근, 차분하게 농담이 섞이지 않는 톤으로 조용히 나가게 했다. 평소에 밉게만 보였던 송선숙 선생님이 초등학생이었지만 큰 보호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선생님과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는 겨울의 날이면 어김없이 컵라면에 계란을 하나 풀어서 먹었다. 선생님은 바지를 입지 않았다. 나의 사춘기가 이른 시기에 찾아왔다면 나는 아마도 선생님의 치마 속을 보려고 애를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모른 채 성적이 나빠 혼나면서 따뜻한 컵라면을 먹을 때는 또 행복해서 야금야금 먹었다. 같은 반 친구들도 몇 명 있었을 테지만 기억에서는 소거를 하겠다. 사실 기억도 없다. 


교실 안은 따뜻했고, 난로 옆은 아늑했고, 선생님이 넣어준 계란이 풀어진 컵라면은 맛있었다. 학년이 바뀌고 나는 성적이 오른 덕분에 학급 위원이 되었다. 완장을 차게 된 것이다.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이후 선생님을 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다른 학교로 간 모양이었다. 지금의 컵라면은 그때보다 훨씬 크고 맛있어졌겠지만 그때의 맛은 나지 않는다. 맛은 정말 추억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일까.


https://youtu.be/wtjro7_R3-4

The Manhattans - Kiss and Say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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