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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5. 2020

전국의 모든 주수인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야구소녀

https://youtu.be/tHgzM5RM-JY


영화를 보다 보면 그만 영화의 인물에 이입이 되어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때는 눈물이 대책 없이 흐르기도 한다. 나는 어쩌면 그러려고 영화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수인을 보면서, 주수인의 성장을 보면서 밑바닥이 보이지도 않는 우물 밑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영화 '소리도 없이'가 보색 대비의 재미였다면, '야구소녀'는 주수인의 컬러에 매료되는 재미에 빠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수인을 계속 응원하게 된다. 주수인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수인 파이팅, 야! 파이팅!!! 하게 된다. 마치 마법처럼,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파이팅을 외치게 된다.


겉으로는 야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화는 주수인의, 주수인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주수인은 99년 대통령 배 4강전에서 덕수정보산업고와 배성고의 시합에서 나온 '안향미' 선수를 기반으로 탄생된 캐릭터이다. 안향미는 구속이 130이 되지 않았는데 영화 속 주수인의 130 구속을 보면, 실제 구속이 136이었던-미국 야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국에서 뛰고 싶어 한국으로 와서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 소속 내야수를 맡고 있는 재미교포 '제인 어' 선수와, 너클볼을 던지는 걸 보면 일본 출신으로 미국으로 진출한 너클 프린세스라고 불린 '요시다 에리' 선수를 오마주한 것 같다.

주수인은 그냥 제멋대로 탄생된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구단에서 남녀의 벽을 깨고 선수생활을 했던 실존인물을 말하고 있다. 안향미 선수는 우리나라 1호 여성 투수였다.

주수인은 자신의 입으로 나는 이제 힘들어서 못하니 포기하렵니다,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너는 못 할 것이니 포기하라고 한다. 욕과 괴롭힘과 힐난조의 시선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에 노력에 노력을 할 뿐이다. 주수인은 좌절이 와도 그것이 좌절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에 발악을 계속할 수 있다. 그 발악 속에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가슴에 탁 와서 부딪히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 그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코를 훌쩍거릴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초딩때부터 같이 야구를 한 정호가 코치에게, 수인이는 감독에게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어서 나가떨어지겠지 하며 훈련을 시켰는데 지금까지 낙오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대사를 한다.

이는 실제로 안향미 선수가 유니폼을 벗을 뻔 한 사건이 있었다. 덕수정보산업고 하득갑 감독은 안향미 선수가 여자라 ‘재수 없다’는 이유로 야구부 전용버스를 타지 못하게 하고, 안향미 선수만 따돌리고 연습경기나 시합을 나가고, 심지어는 선수들에게 안향미 선수가 여자라 합숙생활이 힘들다고 적어내라고 조장하기도 했다. 부당한 처사에 격분한 안향미 선수 아버지가 교육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부당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고 최숙현 선수가 있었던 트라이애슬론을 보면 된다. 엄청난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감독은 원래 페미니스트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여자라서 받는 몹쓸 대우에 대해서. 그런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감독 자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주수인에게 동화가 되었다. 야구란, 특히 프로 입단이라는 건 여자건 남자건 모두에게 엄청나게 힘든 벽이라는 걸. 그래서 주수인이 점점 해내는 것을 보고 여자가 아닌 주수인의 성장을 그리게 되었다.


서러운 단어 '가난'은 주수인의 꿈을 가로막는 큰 벽이 된다. 가난한 부모는 주수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엄마는 모질게만 대한다. 아무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아버지는 주수인의 편에서 어떻게든 뭔가를 해주려는 모습에서는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가 스치고 지나간다. 엘리엇의 발레를 위해 자존심을 버렸던 그 아버지가 쓱 지나간다. 


주수인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넘어져도 주저앉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주수인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 영화다. 주수인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도 좋을 영화 '야구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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