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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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옥희가 옥희한 영화다. 몇 가지의 버전을 봤지만 전영선의 옥희가 가장 재미있다. 이 영화는 아마도 누구나 한 번 보면 두세 번은 더 보지 싶다. 옥희는 요즘으로 치면 메신저다.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영화는 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인 사랑방 손님인 아저씨 김진규와 어머니인 최은희, 두 사람은 참 재미가 없다. 몹시 평면적이고 스테레오 타입으로 보인다. 전형적이고 배경에 묻어 있는 것 같은 주인공들인데 기묘하게도 옥희를 통해 두 사람은 아주 입체적이 된다.
옥희뿐 아니라 식모 아줌마인 도금봉, 그리고 계란 장수인 김희갑 덕분에 영화가 지루하지 않고 복선에 사건에, 그렇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옥희 덕분에 영화는 반짝인다.
옥희는 아저씨의 등장으로 인해 그저 신나기만 하다. 끊임없이 엄마와 아저씨에게 서로의 이야기(속마음과는 다른 묘한)를 전달하며 종알종알 재미를 알아간다. 옥희는 아저씨의 사랑방에 자주 놀러 간다.
아저씨의 밥상 앞에서 “찬이 없어서”라고 하면 김진규가 흐흣하며 기막힌 웃음을 짓고 대화를 하다가 옥희가 좋아하는 삶은 달걀을 아저씨도 좋아한다고 하니 “어머나”라는 옥희표 추임새는 정겹기만 하다.
옥희는 몸이 불덩이가 되는 와중에도 아저씨 방에 놀러 가고 싶어 하고, 아저씨만 찾는다. 의사까지 찾아오고 옥희는 어떻게 될까. 영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말하지만 열린 결말이다. 61년도의 실 풍경이 그러했겠지만 당시의 영화나 문학 등 예술은 봉건 제도나 과부에 대한 편견을 깨려고 노력을 한다.
무엇보다 좋은 건 영화 내내 쇼팽의 녹턴이 배경 음악으로 나온다. 아주 묘하게 어울린다. 6살 옥희의 시선을 따라 영화는 엄마와 아저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순수하고 맑다. 외국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있다면 한국에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오래전 최은희가 메릴린 먼로의 옆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던 것처럼.
#고전영화 #사랑방손님과어머니 #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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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서울의 지붕 밑'이다. 61년에 나온 '서울의 지붕 밑'은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한의사 김학규의 한약방 맞은편에 최두열이라는 젊은 양의가 들어와 버린다. 그런데 그놈이 또 자신의 딸, 인두질을 하는 최신식 미용실을 하는 현옥과 눈이 맞아서 열불 터진다. 이 동네에서 가장 사람들의 선망을 얻고 있는데 이 놈의 딸이 자꾸 맞은편의 양의와 눈을 맞춘다. 법이 마음에 안 들었던 김학규는 친구들의 권유로 시의원에 나가게 되지만 낙선하게 되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딸을 위해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 준다는 내용이다.
허준호의 아버지인 허장강, 코믹의 대부 김희갑, 그 당시 영화를 보면 거의 다 나오는 김승호부터 도금봉, 황정순까지 싹 다 나온다. 구봉서의 젊은 모습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최은희의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알려져서 그렇지 당시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서구적인 미모를 자랑했다. 이광수의 '무정'을 영화화한 것에도 출연을 했고 '해녀'나 다른 영화를 봐도 최은희 만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서울 지붕 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서민이지만 그래도 꽤 중산층이고 그중에서도 '상'이다. 레어먼드 카버가 쓴 소설들의 주인공들처럼 중산층으로 그 자식들은 죽으라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는 내내 유쾌하지만 아직 61년이라 전쟁의 여파에 시달린다. 극 중에서 전시에 남편을 잃어버린 최은희도 그렇고, 한국의 생활 전반에 거의 최빈국에 가깝다.
첫 장면은 동네 주모(황정순)의 딸인 점례가 몸이 이상해서 한약방을 찾고 진맥을 짚어보는 김학규가 혼전임신,라고 하며 술집 주인은 주모라서 자신을 무시한다며 펄떡 뛰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맥 보는 과정에서 딸의 윗도리를 벗게 하고 문방 너머에서는 김희갑과 허장강이 구멍을 뚫어 그 모습을 훔쳐보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딸은 울면서 뛰쳐나가고, 요즘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60년도에는 일어나고 있었다. 점례를 임신시킨 사람은 김학규의 백수 아들 현구(신영균)다.
그 당시에 젊은 양의 최두열(김진규)과 남편을 잃은 현옥(최은희)의 사랑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두 사람은 봉건 제도를 무시했던 소설 '무정'의 영채와 선형처럼 부모 세대라는 엄청난 벽을 깨고 시랑을 쟁취한다. 70년대 티브이 속 서민들의 애환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 시초가 '서울의 지붕 밑'이다.
김진규는 김승호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후 모든 영화의 주연을 차지했다. 내가 본 김진규의 마지막 영화가 '삼포 가는 길'이었다. 황석영의 소설이 영화가 되었는데 젊은 백일섭의 "지랄로"라는 대사가 착착 달라붙고 백화로 나온 문숙이 너무나 예뻤던 영화였다. 마지막 헤어질 때 정류장에서 먹던 삶은 계란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슬픈 계란이 아닌가 싶다.
서울의 지붕 밑을 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주 선명한 꿈. 하지만 선명한 꿈도 결국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그런 꿈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언젠가는 다 잊어버리게 된다. 신영균을 제외한 영화 속 모든 주인공들이 꿈처럼 사라졌으니까.
#고전영화 #한국영화 #서울의지붕밑 #김승호 #최은희 #허장강 #김희갑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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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전영화에 관해서는 모친과 이야기를 하면 잘 통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전영선이 어떻게 캐스팅이 되었는지부터, 아버지는 누구이며 같은 이야기를 줄줄 한다. 어머니는 오래전 못 말리는 영화 소녀로 촌구석에서 동생(작은 이모)과 사촌 동생들과 함께 극장이 있는 시내까지 가서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로버트 레드포드, 비비안 리, 그레이스 켈리 같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하는 날이면 원주 시청에서 일을 하는 외삼촌을 졸라 영화 티켓을 구입해서 첫 상영할 때 들어가서 끝나면 보고 또 보고, 하루 종일 영화를 관람했다. 아름다운 배우들의 연기에 마음을 다 빼앗겼다고 했다. 마치 우유에 젖은 카스텔라처럼 부푼 마음으로 영화를 본 이후에는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런 오래된 영화들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을 지난 세대와 영화적인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건 뭐랄까 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봤던 영화를 자식이 커서 다시 보고 그 영화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나는 한국 고전영화를 꽤나 좋아한다. 그래서 ‘자유부인’이나 ‘서울의 휴일’처럼 50년대 영화부터 ‘오발탄’, ‘아빠의 청춘’, ‘언니는 말괄량이’, ‘서울의 지붕 밑’처럼 60년대의 영화도 많이 봤다. 우리나라는 60년대가 영화의 르네상스였다. 엄청난 영화가 지치지 않고 우는 옆집의 100일 된 사내아이처럼 끊임없이 극장가에 걸려 사람들의 여가를 채웠다. 하지만 대부분 수도 서울의 극장에만 걸려서 지방과 서울의 사람들은 문화 형성의 차이가 아주 심했다. 60년대에는 엄앵란과 신성일이 학생 정도의 나이인데 그때부터 영화에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김승호, 김진규 세대 다음으로 신성일과 엄앵란이었다.
전영록의 부모인 황해와 백설희도 배우이며, 쌍칼로 유명한 박준규의 아버지 박노식(박준규는 어린 시절에 집이 2층짜리에 마당도 넓은 저택에서 살아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았다), 허준호의 아버지 허장강, 최민수의 아버지인 최무룡 등 그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봐도 꽤나 재미가 있다. 그리고 여배우들로는 한은진, 최은희, 도금봉 등 여배우들은 거의 1세대 내지는 1.5세대인데 나이가 다 비슷해서 누군가는 시어머니, 누구는 식모, 누구는 딸이나 며느리로 나온다. 서울 지붕 밑을 봐도 비슷한 배역으로 나온다.
일본으로 치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산 자의 기록’, ‘7인의 사무라이’이 나오는 배우들이 다 비슷하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를 보기를 권장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3시간 정도 되고 흑백시대의 영화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7인의 사무라이는 몇 해 전에 이병헌이 나오는 ‘매그니피센트 7’로 리메이크되었다.
우리나라 고전 영화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서양의 영화(로마의 휴일이나 가스등 같은 영화)나 일본 영화를(맨발의 청춘) 따라 만든 영화들이 있고, 우리나라 문학 소설을 영화로 만든 문예영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영화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안개’가 있고 ‘김약국의 딸들’ ‘오발탄’ 등 아주 많다. 그리고 참 재미있다. 왜냐하면 소설이 무척 재미있게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 고전 영화를 보려면 EBS에서나 하면 보거나 지역의 작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 같은 곳에서 상영을 하면 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도시에는 한 군데가 있었는데 상업영화보다 두 배 정도 비쌌다. 그런데 요즘은 유튜브로 많은 한국 고전 영화를 볼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만 크다면 정말 극장에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 60년대를 지나면 서서히 컬러가 입힌 영화들이 나온다. 얄개시대부터 병태가 나오는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등으로 이어진다. 또 정윤희, 금보라, 김창숙 같은 배우들의 스무 살 시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배철수가 거지 같은 몰골로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철학과 학생으로 나오는 주연의 영화도 있는데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