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소설
하루키의 ‘잠’이라는 단편 소설이 어느 단편집에 실려있는지 잊어버렸다. ‘잠’은 ‘빵가게 재습격’처럼 독단적으로 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함께 출판이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루키의 이 ‘잠‘이라는 단편 소설이 하루키 세계의 ‘상실‘이라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시나가와 원숭이에서는 퍼시버가 ‘상실’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이라면 ‘잠’에서는 퍼시버와 리시버가 동일하게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고 느꼈다.
이 소설의 특징이라면 주인공이 여자다. 여자가 주인공인 하루키의 소설이 또 뭐가 있을까.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라는 단편집에서 ‘레더호젠‘라는 단편 소설이 있는데 거기서 ‘아내‘의 이야기로 이루어지는데 화자가 여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든 이 소설은 주인공이 여자다.
치과의사로 유망한 남편과 그를 닮은 아들과 함께 집안일을 하며 수영을 매일 하면서 평온하게 일상을 보내는데 그 속으로 무례하게 불면이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비커 속의 물에 요오드 용액이 번지듯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잠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깨어있음’이 대신을 하면서 마치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의 소모와 근육의 손실을 겪는 기분을 주인공은 느낀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불면을 이겨보려 하지만 끝내는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깨어있는 자신은 잠이 든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 가족의 모습을 본다. 남편이지만 솔직히 나의 모든 것을 걸 만큼 사랑한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 잔다.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남편의 모친은 어딘가(이상한 점집)에서 아들의 이름을 이상하게 지어와서 그것으로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남편이 잘 자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귀엽기만 한 아들도 잠을 자고 있다.
하지만 아들도 나중에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흡수할 것이라는 걸 안다. 점점 자신과는 모두가 멀어질 거라는 것도 느낀다. 남편이 싫어한다고 해서 좋아하던 초콜릿을 먹지 않았고 아들을 낳은 후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아이의 엄마로, 남편의 아내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멀리하게 된 자신을 돌아본다.
분명 들어온 만큼 뺐는데 원래 구멍이 더 커져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 괴리에서 자신의 잠과 그리고 잠듬과 깨어있는 것과 그리고 수면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아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걸 생각하게 된다. 아주 짤막한 소설로 모든 문장이 마치 시로 이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단편 소설 ‘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