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5일째
368.
“제가 고마동 씨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들어오면서 당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당신이 일련의 사건에 관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또 왜 그런지 당신은 용의자라고 한 말도 거짓이라면 거짓말입니다. 또다시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현재 하나뿐인 용의자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보니 알 수가 없군요. 아니, 판단이라는 것이 서실 않습니다.” 류 형사는 틈을 두었다. 깊은 한숨이 류 형사의 마른입에서 새어 나왔다.
“때론 사건에 가까이 가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보통 용의자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면 안심을 합니다. 당신은 죄가 없는 것 같다든가 당신은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이렇게 운을 띄워 놓은 다음에 유도신문을 하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나거나, 숨기고 있던 사실을 털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마동 씨와 사건들이 분명 연관이 있을 거라는 말을 당신에게 해야 했습니다. 마동 씨의 표정에서 변화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서는 표정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전혀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렇게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니. 사건 당시의 사진을 보고도 표정이나 눈빛의 변화가 없더군요. 그 사건 현장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말입니다. 더불어 당신의 눈빛에서는 정의할 수 없는 순수함이 보입니다. 맑고 차가운 순수함은 실은 아주 무서울 수 있거든요.” 류 형사는 마동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했고 마동은 류 형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잘 받아들였다.
“그럼 제 혐의는 벗어나는 겁니까?” 마동의 말을 듣고 알듯 모를 듯한 웃음을 류 형사는 지었다.
“애당초 혐의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건과 유일하게 관계가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마동 씨니까 계속 조사를 하겠죠. 제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할 겁니다. 마동 씨만이 최원해와 같이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니까 말이죠. 그 사람이 당최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침 묵.
류 형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어떠한 존재인지는 몰라도 응징 같은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응징을 하기에는 그 방법들이 너무 잔인하고 참혹합니다. 인간은 그런 방법으로 살인을 하지 않죠. 나도 그런 성범죄자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살인은 안 되죠. 그리고 살인을 했다면 살인을 한 자를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위해서 오랫동안 훈련을 해왔고 전문성을 띠고 있습니다. 살인범을 잡아들여야 모방범죄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살인범을 잡지 못한다면 따라 하는 범죄자들이 늘어납니다.” 류 형사는 볼펜을 입으로 물려다가 끝을 한 번 보더니 내려놓았다.
“저에겐 신장병에 걸려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딸아이 하나가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 누워있습니다. 어쩌면 기계에 의해 피를 걸러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딸아이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사각의 방 안에서 갇혀서 대부분 보냈습니다. 어린아이지만 일찍부터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의 특징이 너무 어른스럽다는 겁니다. 그래도 아직은 잠든 모습은 영락없는 아기입니다. 아기처럼 몸을 말고 잠이 들어요.”
마동은 태아처럼 잠들었던 는개를 생각했다.
“병실에서 누워있는 딸아이를 두고 나올 때 아파서 아빠를 절박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와야 합니다. 제게는 무엇보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아픕니다. 그래서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꼭 잡고 싶어요. 수빈이에게 아빠는 이렇게 나쁜 사람을 붙잡는 일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끝끝내 못 잡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하릴없이 이렇게 다니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세요?” 류 형사의 눈빛도 절박했다. 고독한 눈빛이었다. 다른 건 없었다. 개념도 없었다. 원망이라든가 타인을 향한 경멸도 없었다. 오로지 지금은 고독함을 지닌 눈빛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