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대형마트는 하여간 재미있는 곳이다. 들어가면서부터 이미 뭘 구입할지 선택 물품이 정해져 있고 그걸 다 고르고 나면 어디 어디 코너로 가서 무엇을 구경할 것인가가 프로그래밍이 된 동선이 있다. 동선을 따라서 다니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가버린다.
주차를 하고 마트에 내려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에는 옷 가게들이 있고 마고리엄의 장난감 공장 같은 곳이 있다. 주인이 세계를 떠돌며 모아놓은 것 같은 상품들을 파는데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물품들을 구경하느라 마트에 내려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 안에는 다이아몬드를 박은 기차나, 말처럼 생긴 코끼리나 허공을 빙빙 도는 물고기 모빌 등이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끈다.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대형 마트에 서점이 다 있어서 서점에 들어가서 책 구경도 했었는데 어느 날 모든 대형마트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마트 속에서 서점이 싹 사라졌다. 대형마트는 대형 마트답게 세일을 했는데 책도 그랬다. 그래서 마트에 딸린 서점에 자주 가다 보면 앉아서 책도 읽고, 책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고, 적립도 하고, 이래저래 괜찮았는데 싹 없어졌다. 서점 코너에는 항상 엄마를 따라온 아이가 앉아서 그림책을 보는 모습은 늘 정겨웠다.
마트로 내려가서 그로서리 쇼핑을 한다. 컵라면과 라면은 늘 탑처럼 쌓여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저 쌓여있는 라면탑을 달려가서 몸으로 무너트리고 싶다. 영화를 보면 잘도 그러는데 실제로는 그러면 안 되겠지요. 라면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수많은 종류의 라면 중에서 마음에 드는 라면을 이만큼 집어서 바구니에 넣고 싶다. 일을 마치고 밤에 가니까 초밥은 늘 세일을 한다. 그래서 먹고 싶은 연어 초밥만 한 통 담아서 넣을 수 있다. 마트 초밥은 먹을 게 못 되니 제대로 된 초밥을 먹으라는 말을 왕왕 듣는데 나는 마트 초밥도 맛있다. 제대로 된 초밥집에는 제대로 된 시간에, 제대로 거기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귀찮다. 그에 비해 맛이 썩 떨어질지 몰라도 언제나 가면 그 자리에 초밥이 있어서 쓱 건져오면 된다. 무엇보다 내 입맛에 마트 초밥도 맛있다는 것이다.
멍게도 꽤 먹을만하다. 멍게는 집에 오면 바로 미나리와 고추장과 함께 밥에 넣어 슥삭슥삭 비벼서 먹으면 맛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고래고기 수육도 맛볼 수 있다. 마트에서 파는 고래고기 수육은 비린내가 아주 많이 나기 때문에 먹고 난 후 다른 가족의 반응이 격해질 수 있다. 양치질로는 어림도 없으니 각오를 해야 한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몇 해 전에는 물개 기름도 팔았다. 물개 기름을 숟가락으로 떠서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고래나 물개는 차가운 바닷속에서 살아야 하니 몸을 보온하기 위해 기름이 가득하다. 요즘은 알약으로 영양제 형태로 나오는 모양인데 아무튼 그런 것도 팔았다. 대단히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피규어를 좋아하니까 피규어 코너를 가면 건담이나 마징가 프라모델을 비롯해서 진열되어 있는 모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마트에서든 아이들을 붙잡기 위해 이런 피규어 장식과 파는 곳이 있지만 규모가 전부 다 다르다. 내가 돌아가면서 들리는 마트는 세 군데로 각 곳의 피규어 코너만 놓고 봤을 때 모두가 그 담당 직원 때문인지 확고하게 색이 다르다. 구입하지는 않을 테지만 지난번에 왔을 때 없던, 마음에 드는, 새로운 버전의 마징가 프라모델이 나오면 집었다가 놓기를 반복한다. 예정에 없던 물품이므로 가격이 저렴해도 서서 아주 고민을 하게 된다.
마트에 가면 늘 구경하는 것이 어항 속 열대어다. 10시가 되면 어항에 보자기를 덮어 씌운다. 열대어들도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그전에 실컷 구경을 해야 한다. 열대어들의 유영을 멍하게 보는 건 아주 평안해진다. 집에서 구피들을 키웠을 때에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새 새벽이 되어 버린다. 열대어들은 조금 큰 녀석들보다 작은 녀석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해주며 잘 지내보자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인간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어두워서 다 잔다고 하지만 또 그때 미워하는 서로에게 대들어 싸울지도 모른다.
어항 속에 반드시 물고기가 없어도 된다. 그저 한들거리는 수초만 바라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다. 나는 그만큼 재미없는 인간이다. 나만큼 재미없는 인간은 재미없는 것에서 또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평소에 심심하다던가 지루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열대어를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높은 굽과 날씬한 다리를 덮은 가죽바지, 리얼 폭스의 코트가 대형마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의 여자였다. 하지만 수수한 화장의 여자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1년 전에 찾았던 룸살롱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였다. 미인이라 할 만큼 예쁜 얼굴은 변함없었고 큰 키 덕분에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마트 2층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한잔했다. 나는 커피 원액을 주문했고 여자는 녹차를 마셨다. 계산은 여자가 했다. 나는 요즘도 잘 다니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이제 룸살롱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했다. 여자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매춘부에게 육체적인 사랑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욕망의 주체인 남자는 육체의 사랑에 집착을 한다.
그런데 그녀는 한 손님에게 그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침에 손님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돈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녀에게 있어서 사랑의 주체는 타자였다. 자신이 아니라 남자를 주체로 보고 욕망에 맞춰 나가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손님을 사랑하게 된 후, 욕망의 주체가 자신이 된 것을 알고 정신적으로 마찰이 일어났다.
그녀의 마음속에 또 다른 자아라고 하는 슈퍼에고를 느끼고 손님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손님에게 그녀를 그저 욕망의 분출구일 뿐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까지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떻든 마트라는 곳은 재미가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게 되었지만 어쩐지 그렇게 재미있는 대형마트도 언젠가부터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오면 한 시간 반 정도가 너무 쉽게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으로의 귀가가 늦어지기 일쑤다.
오랜만에 들린 마트에서 어항 구경도 끝이 나고 음식을 파는 곳으로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담아 왔다. 튀김과 닭발 편육을 담았다. 닭발 편육은 매콤한 맛이다. 밥과 함께 먹어도 맛있지만 역시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는 맛이 좋다. 편육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 간장에 빠진 양파를 곁들여 오물오물거리고 있으면 음음 다음에 또 들러야지, 하는 생각이 순간 든다.
튀김은 식어도 괜찮다. 치킨과 튀김은 뜨거울 때 후후 불어서 아흐 같은 소리를 내면서 먹는 게 맛있지만 식어도 맛있는 게 튀김이다. 담아주는 간장에 겨자를 뿌려서 거기에 찍어 먹는다. 나는 튀김을 항상 김말이와 오징어튀김만 집어서 온다. 김밥 튀김을 좋아하지만 마트에는 팔지 않는다. 김밥 튀김은 조깅하면서 오는 전통시장에서만 판다. 튀김 몇 개는 그대로 먹고 몇 개는 밥 위에 올려서 먹는다. 뭐든 튀기면 맛있다. 그 맛있는 튀김을 밥과 함께 먹으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 작은 행복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