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예전에 ‘양화대교’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난리 났었다. 너도나도 양화대교 노래가 좋아서 빠져들었다. 거기에 아버지까지 들어가니 노래에 뭔가 신화가 입혀졌는지 아버지의 힘듦과 해가 지는 양화대교를 건너는 택시까지. 사람들은 노래 ‘양화대교’에 홀린 듯 자신의 그 어설픈 목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사람들만큼, 티브이에서 떠들어대는 것만큼, 그 노래에 빠져들지 못했다. 아니 빠져들 수 없었다. 일단 지방에 살고 있어서 양화대교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노래에서 처럼 양화대교를 건너며 슬픔을 느끼는 노래에 동참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벽에 사탕을 두고 택시를 운전하러 나가고 전화를 하면 늘 양화대교라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막둥이의 사연이지만 내 친구 중에 아버지를 택시기사로 둔 막둥이가 있었다. 노래만 들으면 택시기사는 전부 가난하게 사는 것처럼 들리지만 택시기사를 둔 내 친구는 가장 빨리 아버지가 아파트를 구입해서 아파트에 살았었다. 게다가 친구 아버지는 노주현의 젊은 시절처럼 잘 생기고 멋진 데다 위트와 유머도 겸비했다. 고등학생이었는데도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는 것에 대해서 나무라는 것도 없었다. 천천히 몰면 오토바이만큼 안전한 녀석도 없지, 사고만 나지 말아라.라는 말도 해주었다. 멋진 아버지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택시를 몰다가 점심은 집에서 늘 가족들과 먹었다. 친구와 친구의 누나가 집에 없을 때는 부부가 나란히 앉아 맛있는 점심을 먹고 소화를 좀 시킨 후 또 택시를 몰러 나갔다. 그런 모습이 나는 정말 부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양화대교의 신화에 나는 전혀 동참하지 않았다. 자이언티의 목소리가 좋다고들 하지만 왜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못할까.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의 가수는 성시경이나 서문탁이다. 물론 더 많지만 그런 목소리의 가수가 좋다. 양화대교의 노래에 흥! 했던 이유 중 가장 는 이유는 티브이에서 온통 떠들어대는 연예인들의 호들갑 때문이다. 맹신에 가까웠다. 아니 모두가 그러니 방호벽을 더 칠 수밖에 없었다. 좋은 노래는 좋은 사람처럼 노래가 가지는 힘 덕분에 가만히 둬도 사람들 마음에 들어찰 수 있는데 너도나도 티브이에서 떠들어 대는 통에 나 같은 인간은 전혀 양화대교의 노래가 좋다고 느끼지 못했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나올 때도 그랬다. 할리 퀸은 최고였다, 할리 퀸이 영화를 살렸다, 볼 건 할리 퀸 밖에 없었다. 정말 끝내주는 할리 퀸이었다. 시사회를 본 사람들이 전부 그런 소리를 해댔다. 특히 빠지지 않고 보는 방구석 1열에서 임필성 감독까지 그런 소리를 해댔다. 그러니 더더욱 그 영화가 보기 싫어졌다. 분명 그렇게 난리 법석 떨 만큼의 영화가 아니라는 건,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또 그렇게나 떠들어 댈 만큼의 영화 속에서 멋진 할리 퀸이 아님에도(왜냐하면 다른 슈퍼파워를 지닌 히어로가 아닌 그저 인간이다) 너도나도 할리 퀸, 할리 퀸. 당시에도 이런 글을 한 번 올린 적이 있었다- 법석 떨지 말자, 소란 피우는 캐릭터만큼 제대로 된 캐릭터를 본 적 없으니까. 너희, 난리 소란 법석 떠는 인간들 때문에 가만히 두면 이만큼 해낼 캐릭터나 영화들이 더 망하게 된다.
이런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배우들이 나오는 연예가중계 같은 프로그램에서 배우들에게 한 번 울어주시겠어요?라고 부탁하면 배우들은 몇 초만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 리포터와 사람들이 박수를 차치며 연기를 무척 잘하는 것처럼 말을 한다. 눈물을 몇 초만에 흘리는 것과 연기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마치 눈물을 금방 쏟아내는 배우는 연기를 아주 잘한다는 공식을 그런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심어놨다. 그리하여 눈물을 몇 초만에 흘리는 배우가 나왔는데 연기가 생각보다 형편없던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지금까지 배우가 나오면 리포터가 눈물 주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리포터는 빨리 갈아치우자. 아니 작가는 갈아치우자.
티브이에 나와서 기가 막히게 하는 말은 맹신하지 않는다. 유명한 의사들이 매일 나와서 하는 소리들, 기본적으로 의사는 병원에서 환자를 돌봐야 하지만 인기에 맛을 들인 의사들이 매일 나와서 그저 하릴없이 떠들어댄다. 마치 큰일 난 것처럼. 오늘[며칠이 지났지만] 오전에는 눈썹 건강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떠든 모양이다. 이제 하다 하다 별. 그것처럼 기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맹신하지는 않는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하는 기기는 대략 4대 정도다. 데스크톱이 있고, 아이패드가 있고 폰이 있고 유심이 없는 폰이 있다. 데스크톱을 빼고는 전부 애플 제품으로 워드로 작성해서 메모장에 옮겨 놓으면 여기저기 각 기기로 확 퍼진다. 연동이 된다. 그래서 하나를 들고 나오지 않거나 두고 나와도 다른 기기로 연동된 글을 다시 이어서 쓰면 된다. 그리고 그날그날 작성한 글 중에 개인적으로 좀 중요하다고 생각한 글은 메일로 옮겨서 데스크톱에 옮겨 놓는다. 이렇게 데스크톱에 옮겨 놓는 이유는 기기를 완전히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기 전, 긴 글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메모장에서 작성을 했는데 그러면 바로 다른 기기들에게 퍼져나간다. 그런데 누구나 한 번쯤은 노트북으로 문서작성을 하다가 갑자기 어? 뭐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느닷없이 꺼진다거나 기껏 작성해 놓은 문서가 날아간다거나. 그렇게 되면 굉장히, 몹시 화가 나고 어디에 분노를 표출해야 할지 난감하다. 순간이지만 정말 어떻게 상황 대처를 해야 할지 난감하다. 울고 싶기도 하고 기분이 확 떨어진다. 무적 같은 애플 기기도 그렇다. 나는 메모장에 3천 개 정도의 메모가 있고 그중에는 하나의 메모에는 워드 100장이 넘어가는 분량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다. 분명 메모를 해서 다른 기기로 옮겨 간 것까지 확인하고 다음 날이 되었는데 작성해 놓은 글이 없어진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 옮겨진 것을 확인 한 다음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를 다 꺼버린다. 그러고 다음 날 확인을 했을 때 만약 하나의 기기에서 그런 오류가 나도 오류까지 번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 놓지 않았을 경우에 작성해 놓은 글이 기기들에서 몽땅 날아가 버린 경우가 여러 번 있었고 지금, 이렇게 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글은 그날그날 메일로 보내 놓고 그걸 데스크톱에 옮겨 놓는다.
혹자는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라고 하는데 지금 나 정도 되면 습관이 되어서 그게 불편한지는 모르겠다. 어떻든 매일 일정량의 글을 작성하니까 그렇게 작성해 놓은 글이 날아갈까 봐 불안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저 습관이 되었다. 그러니까 폰 바탕화면에 앱이 있는 자리가 손가락이 기억을 해서 그대로 터치를 해 버리는 것처럼 습관이 되었다. 기기를 맹신하지 않는 다음 이유는 지금도 메모장에서 검색을 해서 찾으려는 글을 찾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애플 사용자 또는 애플 맹신자에게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만 아마 그들 대부분은 메모장에 방대하게 글을 저장시켜 놓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폰을 신처럼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메모장에 일정량의 메모를 넘어 포화상태가 되면 검색을 해도 잘 찾지 못한다. 그건 아이패드, 아이폰 다 해당된다. 아이폰 8, 아이폰6 에스, 아이폰4에스, 패드나 패드 미니, 심지어 아이팟 터치에서도 같은 현상이다. 시험 삼아 검색으로 찾지 못하는 글을 위로 위로 한 없이 드래그를 해서 찾는 경우도 꽤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기가 너무 비싸다. 기기가 비싼 것이 맹신하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할 수 있다. 새 제품은 매년 쏟아지고 그걸 손에 쥔 뒤에는 그 기기가 다칠까 봐, 스크래치가 날까 봐, 혹시 떨어트릴까 봐 아주 조심하게 다룬다. 아이폰 12프로 맥스 526기가는 190만 원이나 한다. 거의 200만 원에 육박한다. 고가의 폰을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어쩐지 손에 들고 있는 폰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종교처럼 그것에 더욱 달려들어 맹신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므로 해서 폰을 더욱 아기 다루듯 다룬다.
기기를 이렇게 다루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런 와중에 위에서 말하는 오류가 나면 더 없는 허탈과 짜증이 몰려온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막 사용할 수 있게 중고로 구입을 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이상하게 사용하는 모든 기기들을 구입했을 당시의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채로 사용을 하는 편이다. 딱히 그러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데, 아주 오래된 카메라도 새것 같고, 정말 오래된 미니카세트 플레이어도 마치 며칠 전에 구입한 것 같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중고폰 가게 주인이 폰에 액정 보호 필름을 얼마 전에 붙여 주었다)은 보호필름은 붙이지 않고 사용을 하는데 유튜버들이 말하는 것처럼 화면에 딱히 스크래치가 가거나 떨어트리지 않는 이상 손상이 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는데 화면에 무슨 손상이 갈까. 아이패드만 3년 전인가 새것으로 구매했고 그 나머지는 전부 중고들이다.
얼리어답터도 아니고 나는 기계치에 속하는데 예전에는 블랙베리나 갤럭시 초기 모델을 사용하기도 했다.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그때는 극장에서 영화를 자주 볼 때인데 블랙베리의 자판이 손에 익으면 자판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대사가 있으면 바로 입력이 가능했다. 초기 갤럭시 모델은 그 당시에는 너무 커서 아아 이렇게 벽돌 같다니 했지만 지금은 화면 크기가 보통의 수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기기들은 때가 되면 말썽을 일으키는 7세 아이처럼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 모든 기기들이 나오기 전, 아이폰이 도래하기 전 주머니에 들어가는, 소위 미니 노트북을 하나 장만했었다. 그 이전에는 늘 수첩에다 메모를 했다. 주머니에 수첩이나 메모지를 넣어 다니다가 뭔가가 생각이 나면 메모를 했다. 그 자리가 길거리면 벽에 대고 길거리에 서서 메모를 했고, 어딘가에 앉아 있다면 테이블이 될 만한 무엇에 놓고 메모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메모 뭉치가 하수구에 빠져버렸다. 으악! 충격에서 헤어났을 때, 그 당시에 값비싼 미니 노트북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일단 주머니에 들어갔다. 들고 다니기가 좋다는 말이다. 마트에서 그로서리 쇼핑을 하고 나올 때 식당에 앉아서 잠시 메모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작은 노트북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할 수 있다니, 하며 좋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는 터치가 안 되는 화면이라 마우스 없이 커서를 움직이는데 인내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요즘 기기들은 꺼진 상태에서 구동하기까지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냥 바로 되지만 저건 컴퓨터니까 시스템 종료에서 켜질 때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와이파이가 되는 지역이 별로 없어서 인터넷을 하기까지가 꽤 힘들었다. 이렇게 흘러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 비단 맹신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기만 그런 게 아니다. 종교나 정치인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많이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종교단체다. 도무지 어떤 방식으로도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그건 정치인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