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5일째 저녁
387.
그때, 쿠르르르릉.
50톤 트럭이 굉장한 속력으로 돌진하는 굉음이 들렸다. 엘리베이터는 거친 소리를 내며 다시 밑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경비는 몸이 따가웠고 누린내 때문에 구토를 하면서 비상벨을 눌렀고 동시에 엘리베이터는 바닥으로 떨어져 납작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부딪치자 괄태충의 몸은 모두 터져버린 점액질에 의해 엘리베이터가 추락한 바닥은 지하세계를 연상케 했다. 누린내가 빌딩 안으로 크게 번져갔다. 인슈 타워에 남아서 야근을 하던 사람들은 손으로 코를 막고 복도를 뛰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는 하늘의 저편에서 자줏빛 연기를 뿜어내는 빌딩이 보였다. 빌딩은 최고층인 43층에서 그 밑으로 30층까지 무너져 내렸다. 인슈 타워의 상층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근처 건물의 사람들도 대피를 했다. 소방대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였다. 각 구에 배치되어있던 소방서에서 대원들이 대부분 출동을 했다. 밤인데도 인슈 타워 주위에는 마치 숱이 많은 인도 여자의 머리카락 같은 인파가 우글거리며 구경을 했고 그들 대부분은 코를 막고 있었다. 누린내는 건물을 부식시키며 풍기는 냄새와 결합하여 더욱 고약하고 소름 끼치는 악취로 사람들의 인상을 구기게 만들었다. 인슈 타워가 무너지면서 만들어내는 연기는 확실히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
빌딩 바닥의 잔해 속에는 형체를 알 수 없이 찢겨나간 큰 괄태충의 몸통 부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빌딩 바닥의 깨끗한 환석과 대리석은 괄태충의 점액질과 조각난 몸통으로 기이한 무늬를 만들었고 소방대원들은 누린내 때문에 작업이 더뎠다. 위기는 기회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빌딩 안에 가족을 두고 땅을 치며 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경비는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심정지가 왔고 괄태충의 점막에 에워 쌓인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퉁퉁 부은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그 모습은 바다에 떠서 익어버린 채 죽은 50대 남자의 시신과 비슷한 형태였다. 무너진 빌딩의 잔해에 의해 몸이 갈기갈기 찢긴 남자 3명의 시체도 발견되었다.
인슈 타워 상층부의 철골구조물이 전부 부식이 되어 녹아내렸다. 부식된 부위는 자줏빛을 띠는 점액질로 뒤덮여 있었다. 인슈 타워는 30층 밑으로는 빌딩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인슈 타워의 위풍당당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층부는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여 파손된 부분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했고 30층 밑으로 야간근무를 하던 사람들은 피해가 덜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골을 파내는 듯한 지독한 누린내의 영향으로 심각한 두통을 호소했고 지속적으로 구토를 했다. 빌딩 안으로 들어간 소방대원들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누린내로 인해서 빌딩진입이 어려웠다. 누린내의 악취는 방호복을 뚫고 마스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괄태충의 흩어진 몸뚱이를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괄태충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어딘가로 빠져나가 버렸는지 수백, 수천 마리의 괄태충이 지나간 자리가 부식된 모습만 경찰과 소방대원들의 눈에 띄었다. 경찰에게 보험회사 사고조사팀의 한 사람이 휴게실에서 본 괄태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경찰은 믿으려 들지 않았고 종말론 자들은 해변의 바닷물이 끓어오르는 사건 이후에 바빠지기 시작했다.
장군이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다는 묵묵하게 그 자리를 늘 지켰다. 변한 것이라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흐름이었다. 흐름 속에 휘말리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다. 흔적이 없어져 버린다. 흐름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두워진 바다는 깊이를 숨긴 채 고요했으며 너울거리는 표면이 미약하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해무 때문에 바다의 모습은 더욱 혼돈스러웠고 신비하게 보였다. 달이 떠 있었다면 달빛을 반사시켜 자아내던 달무리의 잔인한 리리시즘도 녹아 있을 법한 밤바다였다. 고요한 밤바다는 오후부터 시작된 비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바다를 제외한 모든 것이 비에 젖어가는 세상에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