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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7. 2021

바닷가에서

일상 에세이


나는 바다를 보며 생각 없이 귤을 까먹고 있었다. 귤껍질을 보니 여섯 개 째였다. 어떤 사소한 동작은 체내에 무엇인가가 쌓인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싸구려 와인을 병 째 한 모금 마셨다. 귤은 달고 와인은 쌉싸름했다. 바다는 부는 바람에 비해 아주 잔잔했다. 조금 떨어져서 보는 바다의 색은 평소와 달리 청록색을 띠고 있었다. 바다는 많은 색을 지니고 있다.


"
바다는 오늘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요.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존재해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 바다에 돌을 던져주기를 바란다니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아요.

바다는 저토록 무표정이지만 표정이 다양한 인간과 떨어지기 싫은 겁니다. 왜냐하면 바다도 사람의 얼굴처럼 여러 표정을 지니고 있거든요. 바다는 순수한 동기라든가 멍청한 행위 같은 게 없지요. 바다를 인간처럼 생각하면 안 되지만 인간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때 바다에는 추억이라는 게 생겨나고 이야기라는 것이 생성되지요. 그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라고 해서 역시 멋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저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겁니다. 

                                                     
눈을 감고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릴 겁니다. 물론 그건 사람들의 소리는 아니지요. 바다가 내는 하울링 같은 소리입니다. 여러 가지가 뒤섞인 소리입니다. 바다가 내는 뒤섞인 소리에서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바다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앞으로 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또 모르지요, 백 년 후에는 설명이 가능할지도. 하지만 그때에는 설명이 전혀 필요 없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시간에 이길 수 없지요. 그저 천천히 시간을 빗질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에요. 

                              "

나는 말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옆에는 노숙자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귤을 권했다. 사양하지 않고 귤을 받아서 내 마음이 편했다. 이 정도의 호의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근래에는 줄어들었다. 귤을 받는 그의 손톱은 길었으니 까맣고 때가 타 있었다. 나는 귤을 양 손으로 다섯 개를 건넸다. 두 병의 와인이 있었는데 한 병도 건넸다. 노인은 고맙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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