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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6. 2021

무너질 수없어

어떤 이야기


 봄이 되었다. 세상에 봄꽃이 모든 거리를 점령했다. 봄을 느낄 새도 없이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아이가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냐고 울먹인다. 유치원에도 가기 싫다고 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아이가 보챈다. 한동안 잠잠했는데 또 보채기 시작했다. 엄마가 퇴근하고 올 때 맛있는 거 사 온다고 해도 아이는 필요 없다고 한다. 그냥 엄마만 종일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거나, 타이르거나 달랜다.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다. 아이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에게 매달린다.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시간이 엄마를 회사에 늦게 나가게 만들어 난처하게 한다는 것을, 어렸지만 알고 있었다.


 스타킹의 올이 나갔다는 걸 몰랐다. 팀장에게 실적 때문에 한 소리를 들었다. 서류를 건네는데 손톱에 생기가 빠져나갔다는 것이 보였다. 누구도 내 손톱에 대해서 뭐라 하지는 않지만 마치 한 겨울의 죽은 나무껍질 같았다. 단백질이 빠져나가 줄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에 왠지 모를 결락이 마음을 잠식했다. 거울을 보니 낯선 여자가 있었다. 머리도 푸석해서 할 수 없이 묶었다. 그동안 어깨가 아프더니 목 길이도 달라졌다.


 회의하는 도중에 아이의 유치원에서 전화가 자꾸 왔다. 받을 수 없는데 전화가 끊어지지 않고 온다. 낭패지만 나는 회의 중에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였다. 평소에 그러지 않는데 아이가 하루 종일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있어야겠다고 한다. 회의실에서 나를 찾는다. 내가 설명할 차례다. 전화에서는 아이가 끝없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운다. 이 위치, 여기까지 오는데 힘들었다 너무. 전화기 너머로 아이가 나를 찾는다.


 아이는 나에게 안겨 떨어지지 않고 있다. 환절기라 그런지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 때문에 아이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마음처럼 안 된다. 회의 도중에 나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이가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등에서 자꾸 땀이 났다. 냄비에 물이 끓고 있다. 엄마는 밥해야 해,라고 하지만 아이는 더욱 품으로 파고든다. 아이를 겨우 달래 내려놓고 일어나려는데 자꾸 덥다. 등에서 땀이 많이 나서 옷이 축축해졌다. 숨 쉬는 게 가쁘고 눈앞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나를 부르는 거 같은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냄비가 끓어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카레를 끓이고 있었는데. 아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몸이 휘청거린다는 것을 알고 나는 더듬더듬 폰을 찾아 119를 불렀다. 구급차가 왔고 아이가 옆에서 울고 있다. 응급실에 갈 때까지 나는 어렴풋이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것 같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아이가 내 옆에서 울고 있어서……. 

 나는 병에 걸린 것일까. 

 나는 이대로 무너지는 것일까. 

 그대로 쓰러져 못 일어나는 것일까.


 응급실에서 감기라고 했다. 감기에 탈수가 겹쳤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탈수현상이라니. 의사는 병실에서 주사를 맞고 좀 잠들었다가 일어나라고 했다. 아이는 병원 측에서 봐준다고 했다. 병실로 옮겨지는 침대에 누워 병원 복도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봤다. 어쩐지 모두가 하나씩 불행을 안고 있는 것 같아서 병원에 오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병실비, 병원비, 약값……. 그때 눈물이 나도 모르게 핑 돌았다. 하지만 눈물을 삼켰다. 독감도 아니고 감기에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는 것에 더 비참했다.


 병실에 옮겨져 누웠을 때 주사 기운 때문에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아이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이가 잡은 내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봤다. 엄마,,,, 많이 아팠어?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그 순간 다짐했다. 유리가 깨지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해도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너를 지켜야겠다고, 비록 내 몸은 부서지기 쉽지만 너 만은 지켜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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