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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1. 2021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아

일상 이야기



조깅을 할 때 당연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달리게 된다. (그런데 여름에는 옷이 얇아서 음악 듣는 기기가 무거워 음악은 듣지 않고 그저 달리기만 한다.) 달리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그때는 볼륨을 좀 더 높여서 음악을 듣는다. 조깅을 할 때에는 아무래도 자전거도, 앞에서 오는 사람도, 거리에 나오면 자동차도, 그 모든 소리를 무시하고 음악을 크게 들으며 달릴 수만은 없다. 그래서 잠시 앉아서 쉴 때에는 볼륨을 높여 음악을 좀 듣는다. 이어폰을 끼고 음향이 빵빵하게 나오면 아아 음악을 듣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깊게 빠져든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커서 아침저녁으로는 날씨가 쌀쌀맞은 날에는 달리면서 흘린 땀이 식을 때 자칫 감기가 걸릴 수 있기에 아직 두꺼운 옷을 입고 있고 그 속에 아이팟 클래식을 넣어 놓고 음악을 들으며 달리고 있다. 그러면 타인에게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혹 이어폰 줄이 거추장스러운데 왜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또 누군가는-애플의 맹신자- 아직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뭔가 좀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보통 원펀맨의 사이타마 같은 눈이 되어 딴짓을 하거나 다른 곳을 보거나 하품을 해버린다. 아함.

 

내가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이유는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줄곧 듣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아이팟 클래식은 유선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도킹 시스템의 스피커(이건 참 가지고 싶지만)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만 그건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동을 하면서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들으려면 유선 이어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주머니에 들어가 있어서 기기가 보이지 않고 유선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입을 대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도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로 카세트테이프의 음악을 듣고 있으니 아이팟 클래식은 꽤나 발전한 음장 기기인 샘이다. 이 음장 기기, 아이팟 클래식도 한 십 년 정도 됐나? 아무튼 그동안 160기가나 되는 기기 속에 차곡차곡 음악이 쌓여 있어서 도대체 어떤 음악들이 들어있는지 나도 모를 지경이다. 3천 곡 정도가 들어있는데 아직도 이렇게 작은 기기에 이렇게나 많은 음악이 들어가다니, 와 대단하군, 하는 생각을 한다. 팝과 가요의 비율이 7대 3 정도로 들어있다. 시끄럽고 해비 한 메틀 곡들도 많고 재즈곡도 꽤 많이 들어있다. 나는 재즈는 잘 모르지만 듣다 보면 좋은 곡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간혹 아주 스탠더드 하고 끈적한 재즈곡들이 흐를 때가 있는데 이런 곡이 조깅할 때 나오면 힘들어진다. 달리는 패턴이 있는데 그만 엘라 피츠 제럴드나 빌리 헐리데이의 노래나 콜먼 호킨스의 바디 앤 소울 같은 곡이 흘러나오면 제동이 걸리고 만다. 음악은 너무 좋으나 아주 느리게 나오는 곡이라 이런 음악은 어딘가 창밖을 보는 곳에 앉아서 위스키를 탄 커피를 홀짝이며 들어야지 슉슉거리며 달리면서 듣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조깅을 하다가 콜먼 호킨스의 바디 앤 소울이 나오면 다른 곡으로 바꾸던지 해야 하는데 어떻던 주머니에서 아이팟을 꺼내야 하니 달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더라도 흐름은 끊기고 만다. 만약 반환점 정도를 돌 때 이런 재즈곡이 나온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벤치에 앉아 잠시 노래를 크게 듣는다. 바람을 맞으며 등에 흐른 땀을 축축하게 느끼며 듣는 재즈곡이 꽤 훌륭하게 느껴진다.


가끔 이렇게 앉아서 음악을 듣는데 마음의 한 부분을 건드리는 음악이 나올 때가 있다. 요컨대 조니 미첼의 노래라던가, 조용필의 노래라든가. 조니 미첼은 지구 상에서 가장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목소리로 뽑아내는 노래는 내 마음에 내려앉아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뭉크의 그림처럼 뒤틀어 버린다. 하늘은 음울한 색과 암울한 냄새로 가득 차고 바람은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것만 같다. 나는 왜 표도 나지 않고 고통스럽기만 한데 매일 이렇게 달리고 있을까, 나는 정말 어디로 가는 걸까. 같은 생각에 사로 잡히고 만다. 그런 와중에 조니 미첼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졸졸 흐른다. 참 기이한 일이다. 조용필의 노래는 가사가 연약한 마음의 부분을 건드린다. 노래에도 표정이 있고 깊이가 있고 넓이가 보인다. 노래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서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뭉클하기까지 한다. 


https://youtu.be/tKQSlH-LLTQ

Joni Mitchell - Both Sides Now 2000 lives

https://youtu.be/Mnp-m5ts-GM

바람의 노래 조용필(데뷔 30주년 콘서트)



하지만 마냥 앉아서 음악만 들을 수 없으니 일어나서 몸을 좀 풀고 다시 달려서 종착지로 간다. 이렇게 매일 달리다 보면 한 인간의 삶을 하루 만에 짧게 살아보는 느낌이다. 빠르게 달리고플 때는 파워레인저 만한 노래도 없다. 잘 나가는 해비 매틀 밴드는 파워레인저를 거의 다 불렀다. 미스터 빅, 메탈리카 등 폭발하면서 터지듯 연주와 노래가 이어진다. 그에 맞게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폐 역시 터질 듯 펌프질을 한다. 한 번 들어볼까 얼마나 신나고 멋진 곡인지.


https://youtu.be/SH0t-adrTcA

극장판 오프닝 Mr.Big - Go Go Power Ranger

https://youtu.be/JC33Ak17ZAo

Metallica - Go go Power Rangers (Official Video)

 

여러 휴대용 음장 기기가 있지만 아이팟 클래식 만한 게 없다. 나는 또 아이팟 클래식이 좋아서 이 기기에 관한 짤막한 소설을 써 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431


아이팟 클래식은 HDD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잉 하는 소음이 발생하고 침수와 충격에 약하다. 그래서 고장이 나면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잘 돌아가고 있으며 한 번 충전하면 휴대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배터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이팟 클래식은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


아이팟 클래식과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또 무선 이어폰이 대중화된 이 시기에 유선 이어폰을 바라보는 몇몇의 시선을 보면 사소한 일상적인 부분까지 무한 경쟁이 손을 뻗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쟁이 없는 관계는 발전할 수 없으니 유치원,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동생이나 언니, 누나와도 경쟁을 하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경쟁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회에 돌입한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한다.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경쟁에 소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과가 똑같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구조 자체가 공평하게 결과가 돌아가지 않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은 실은 아주 단순한 구조이지만 우리는 어쩌다가 시스템에 종속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다 보면 매일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몇몇은 그 좌절에 그만 굴복하고 만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상적인 부분까지 무한경쟁이 들어와 버리게 된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만 뒤떨어지지 않을까, 스마트와치의 사용빈도가 빈약함에도 나만 차고 있지 않으면 없어 보이는 게 아닐까. 스마트와치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이왕이면,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또 고가의 스마트워치를 구입하여 착용하게 된다.

스마트 워치 문구가 이렇다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실린 스마트 워치의 문구는 이렇다. '조선시대 살아?'라는 문구가 아마도 조금씩 우리의 살을 파고 들어와 아프게 한다. 그리고 조금씩 파고든 경쟁심리는 시간이 지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할지도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오늘이라지만 모두가 오늘은 처음이기에 오늘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날지, 또 회사에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알 수는 없다. 그리하여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힘겨워한다. 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큼 일상을 평범하고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운전을 하고,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조깅을 하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매일 다르고, 디제이의 텐션도 매일 격차가 있다. 운전을 하면서 보는 자동차나 날씨 역시 매일 다르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글을 피드에 올리면 어제 올린 글에서 오늘 조금 발전했다. 조깅을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매일 다르다. 지겹기만 한 반복된 일상이지만 그 속에는 확실하게 변화가 있다.

 

며칠 전에는 조깅화의 바닥에 구멍이 났다. 그만큼 뛰었던 모양이다. 그래 봐야 달리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서 쉬는 수준이지만 매일 뛰었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똑같은 조깅화를 하나 더 구입했다. 새 조깅화를 신고 달리는 기분만큼 또 좋은 기분은 없다. 유선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해가 길어져 저녁에도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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