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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1.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21

14장 6일째

421.


 “설거지는 당신이 해요. 당신이 이번에는 많이 먹었으니”라고 는개가 말했다. 마동은 자의로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고마워요. 당신이 먼저 다가와 줘서.”


 ‘내 입술을 용서해줘’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저녁에 봐요”라며 는개는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 속 상대방과 몇 마디 나누고 마지막으로 거액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웃음을 보이고 현관을 빠져나갔다. 는개가 나가고 만들어진 부재의 공간은 역시 크나큰 공백을 만들어냈다. 마동은 는개가 가버리고 난 후 더 이상 무엇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커다란 공백은 메워지지 않아서 마동은 팔을 휘저었다. 마동의 행동에 따라 는개가 남긴 그녀의 향이 옮겨 다닐 뿐이었다. 곧 그마저도 없어질 터였다. 


 마동은 발가벗은 채로 베란다의 창가에 다가가 섰다. 비는 거칠 줄 모르고 떨어지고 있었다. 저녁에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는개를 더 잇아 못 본다고 마동은 입으로 소리를 내어서 말해보았다. 소리는 입 밖으로 흘러나와서 공백 속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는개를 볼 수 없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나는 정말 는개의 희망일까. 


 베란다 창에 마동은 몸을 바짝 기댔다. 한 여름의 한가운데 내리는 세찬 비 때문에 차갑게 변한 창문의 기온이 마동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그 차가운 기온은 마동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쿠쿠쿠쿵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동시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류 형사였다.    

 

 다시 들어와 보는 모던타임스였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밖에 쏟아지는 비는 정체를 모르는 힘이 아주 좋은 거인이 고집스럽게 하늘에 구멍을 뚫어 놓은 풍경 같았다. 굶주림에 울부짖는 맹수의 소리처럼 천둥소리도 크게 들렸다. 카페의 주인도 오늘은 장사가 안 될 것 같다며 아르바이트생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카페의 주인은 아르바이트생을 이곳에 더 붙잡아 두었다가는 집 잃은 개구리가 되어 어디로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동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자연은 가끔 인간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다며 카페 주인은 마동에게 커피를 내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인이 딱히 말을 많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말을 해서 지금 자신과 카페 근처에 닥친 지변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었다.


 카페 주인은 몇 번 왔던 마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딱히 마동은 누군가보다 튀는 외모를 지닌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마동을 한 번 보면 그를 기억해내곤 했다. 그런 일이 가끔씩 있었다. 눈썹이 짙은 것도 아니었고 키가 아주 큰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의사의 얼굴처럼 아주 잘생긴 외모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웃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마동을 본 사람 중에 몇몇은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버리지 않았다. 단순히 마동의 착각일지도 몰랐지만.


 카페의 주인은 지금 당장은 구멍 뚫린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카페는 건물주에게 24시간 동안에 해당하는 세를 내고 있는 것인데 하루 중에 고작 반나절 장사를 할 뿐이다. 그런데 비정한 영화에서 내리는 비처럼 세상을 거칠게 비가 덮으면 영업은 막을 내려야 했다. 카페 주인의 생각이 마동의 의식에 와 닿았다. 주인의 생각은 그렇게 하늘에 대고 원망을 하고 있었다. 카페의 벽면에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를 틀어주던 영사기가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류 형사를 기다리며 마동은 모던타임스를 볼 요량으로 비를 맞으며 일찍 나왔는데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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