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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0.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20

14장 6일째

420.


 “마지막 남은 것을 버려야 해. 당분간은 오지 못할 거야.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마동은 는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 그녀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 그거 알아요? 이렇게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치마를 입고 어울리지 않게 운동화를 신고 출근을 한다고 한들, 규칙이나 성립이 깨진다고 삶이 불편할까요?” 는개는 조용히 낮은 음성으로 읊조렸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삶의 부분에 있어서 사소함이 배제되어간다면 우리는 불편을 느끼는 거예요. 사소함이란 삶의 전부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삶의 일부도 차지하지 않는 사소함이지만 이 사소함이 소멸해버리고 나면 불편함은 서서히 커져 버린다고요. 그래서 우리들은 사소하지만 그것에 집착을 하고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어요. 옷에 어울리는 신발을 신고 그 차림에 맞는 가방을 들고 거리를 걸어서 회사로 출근하는 모습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소함이에요. 이 사소함이 깨진다고 해서 삶의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지만 사소한 작은 부분이 생각과 일치하게 맞아떨어지면 얼굴에 미소를 짓고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를 해요. 그 하루하루가 모여서 우리들을 이루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당신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을지는 몰라도 당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에게는 그 하루가 완전한 삶인 셈이에요. 알겠어요?” 는개는 조용하게 말했다. 두 손으로 마동의 뺨을 감쌌고 그녀는 마동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느 날 비가 내리고 있어요, 처음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렸어요. 그런데 비가 지금처럼 너무 쏟아지는 거예요. 사장님이 걱정해서 집에 일찍 보내줬죠. 작은 감동이에요.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가는 정류장에서 내렸어요. 한 블록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어떤 아이가 정류장에 앉아서 끊어진 우산을 고치고 있는 거예요. 그 아이에게 ‘난 집이 저기 한 블록만 가면 되니 저기까지 같이 가서 넌 이 우산으로 집으로 가’하며 그 아이와 같이 한 블록을 걸어가서 내 우산을 주고 집으로 들어왔어요. 생각해 보세요. 아주 작지만 무엇인지 모를 사소함에서 마음이 일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우리들, 사람에게 어떤 것이 중요할까요.” 는개는 여전히 마동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동이 들여다본 는개의 눈동자 속에는 아직 펼쳐지지 않는 세계가 보였다. 그녀는 되도록 마동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 주었다.


 “버려지지 않는 것은 반드시 억지로 버리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시간이 지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버려지게 되어있어요. 바퀴벌레가 없어지면 안 되는 것처럼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은 누군가에게 충분히 필요한 사람인 걸요. 그리고 자기 자신은 이겨야 할 존재가 아니에요. 누구보다 더 사랑해야 할 존재가 자신인걸요.”


 흠.


 또 한 번의 기적 같은 웃음.


 이 어두운 빗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환희적 웃음.


 “우리는 언제나 따분하고 지루한 삶을 살고 있어요. 누구나 그래요. 권태가 우리의 발목을 휘어잡아 끌잖아요. 그렇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희망이라는 걸 보는 거예요. 희망이라는 게 평범하게 지내는 일상 속에서는 늘 배신을 해요. 절망의 끝에 가서야 희망이 제 역할을 하는 거라구요. 어떤 이는 누군가의 희망이죠. 슬픔과 안타까움이 팽배하게 깔려있는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기대하면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이와 살아가고 싶으니까요.”


 “그런 성립이 존재하는 거예요. 우리들 ‘마음속’에는요.”


 는개는 늦었다며 일어나서 덜 말린 옷을 입었다. 회사에서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으면 된다고 했다. 마동은 그녀를 데려다주겠다며 욕실로 들어가서 얼굴을 대충 씻었다. 는개는 마동에게 괜찮다고 했다. 어두운 곳에서 완전한 빛처럼 환하게 말했다. 시계를 보더니 이제 5분 정도 있으면 점심을 먹은 정 대리가 사람들과 자신의 차로 이 근처로 픽업하러 온다고 했다. 는개는 어느새 세련된 오피스 우먼의 모습을 하고 가방을 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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