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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4.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23

14장 6일째

423.


 “자연적으로 들어버린 의심은 어느 순간 바뀌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과가 의심과 다르게 올바른 방향이면 경계심이 풀리고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빨리 다른 일에 매달릴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의도적으로 해버린 의심은 결과와 상관없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만 갑니다. 한 번 하기 시작한 의도적인 의심은 결과와 무관하게 부풀어 올라 주위 환경까지 의심을 하게 만듭니다. 결과에 순응하지 않죠. 의심이라는 것은 결국 행동에 제약을 가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여전히 류 형사는 웃음을 지으면서 마동에게 말했다.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수염도 같이 움직였고 그것은 마치 늪지대가 울렁거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류 형사의 웃음 속에는 여러 개의 해학이 들어있었다.


 웃고 싶어서 웃음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웃기 싫다고 해서 웃지 않을 수만은 없다. 류 형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형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용의자 앞에서 자신을 숨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류 형사는 알고 있었다. 류 형사는 마동에 대해서 의심을 갖고 있지만 경계심은 분명 풀고 있었다. 류 형사는 자신이 마동의 커피를 사겠다며 뭘 마시겠냐고 물었다. 마동은 자신 앞에 있는 커피 잔을 들어 보이며 이미 마시고 있다고 했다. 류 형사는 선불로 계산하고 직접 음료를 받아오는 카페의 생리를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리를 좋아할 리는 없었다. 신참 형사가 있었으면 시켰을 것이다.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요즘 들어 점점 소멸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셀프서비스라는 곳의 음료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류 형사는 마동의 의사를 묻지 않고 커피를 자신의 것과 함께 한 잔 더 받아왔다. 두 잔 모두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커피였다. 비가 오는 여름에 우산을 쓰고 빨리 걸으면 더 더운 법이다. 류 형사는 자신 앞의 시원한 음료의 빨대를 빼 버리고 벌컥벌컥 마셨다. 목이 탔을 모양이었다.


 그때, 카페의 주인이 이것 좀 보라면서 카페의 조도를 낮추고 모던타임스를 틀었던 영사기를 돌렸다. 영사기를 통해 벽면에 비친 화면은 뉴스였다. 전국의 쓰레기 매립장의 모습이 보였다. 쓰레기 매립장은 거대한 산처럼 쓰레기가 큰 더미를 만들었고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연기가 심하게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불이 붙어서 오르는 연기와는 판이하게 달랐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과도 달랐다.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는 거대한 괴생물체가 숨을 쉬며 불어내는 숨처럼 기분 나쁘게 올랐고 연기는 어둠의 색을 띠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는 비를 계속 맞으면서 흐리고 우울한 생명의 연기를 피워 어두운 하늘로 올려 보내는 모습이었다. 마치 죽은 사람의 혼령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듯 연기는 고요하고 침착했지만 불쾌하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암묵적이며 고요하고 기분 나쁜 쓰레기 더미는 블랙홀을 빠져나가야만 볼 수 있는 외계 생명체처럼, 눈도 이름도 없고 학술적인 근거도 없는 생물체가 그곳에 숨어서 비밀스럽고 내밀한 숨을 내쉬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희망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주색의 연기는 떨어지는 빗속에서 하늘로 피어오르는 모습이 전국의 각 지방 방송사에서 담은 촬영 장면으로 나오고 있었다. 곧이어 연기가 피어오르는 쓰레기 더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촬영을 하던 방송 관계자들과 기자는 흥분된 모습으로 보도를 했고 쓰레기 더미가 꿈틀거릴수록 악취가 심하게 났다. 악취는 냄새만으로 모든 것을 썩어 버리게 할 만큼 독했고 기자는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마이크에 입을 대고 보고를 했다. 카메라맨 한 사람은 냄새에 그만 카메라를 떨어뜨려 화면이 비틀어지는가 싶더니 다른 카메라가 급하게 켜지는 모습이 비켜졌다. 꿈틀거리던 쓰레기 더미 속은 한순간에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개미 떼처럼 수많은 괄태충들이 기어 나오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서 보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기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사태를 보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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