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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9.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38

14장 6일째

438.


 “점심을 전투식량으로 간단하게 먹고 우리 조는 수색을 다시 했습니다. 우리 조에게 할당된 지역과 함께 좀 더 넓은 지역을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저는 필사적으로 탈영병을 찾아서 수색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탈영병을 잡는다면 병사들은 휴가의 기쁨을 맛볼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열심히 수색에 임했고 저는 자책감 때문에 수색에 몰두했어요. 우리가 수색하는 지역에 왜인지 모르겠으나 탈영병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냄새가 났어요. 탈영병의 무너진 냄새가 말이죠.” 카페 주인도 틈을 두었다. 틈을 이용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탈영병은 나름대로 아픔과 고독과 마음의 병을 안고 탈영을 했지만 우리들은 그런 것 따위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군인이니까요. 훈련받고 명령대로 움직이는 게 군인이니까 말이죠. 전투식량을 빨리 먹고 제대로 앉아서 쉬지 않고 움직인 탓인지, 아니면 긴장을 한 탓인지 배가 너무 아팠습니다. 내장기관에서 신호가 왔어요. 군인으로서는 저는 이래저래 맞지 않는 이유가 하나씩 더해졌습니다. 같은 조 대원들에게 대변을 금방 보고 갈 테니 천천히 수색을 하라고 명령 한 다음, 근처의 풀밭에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총은 몸에서 떨어트리면 안 되기에 한 손은 총을 파지 하고 한 손에는 휴지를 들고 바지를 내리고 앉아있었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마치 며칠 전의 안 좋은 일을 다시 끄집어내려는 듯 얼굴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해가 쨍쨍하던, 바짝 마른하늘이었는데 소나기가 떨어지는 겁니다. 마른하늘이었다가 갑자기 어둑어둑 해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 있지 않습니까? 소나기는 으레 그런 것이니까요. 대평리에는 특히 그런 소나기가 여름에 자주 내렸습니다. 소나기를 맞으며 볼일을 보고 있으니 시원했습니다. 여름이 아니면 도저히 느껴보지 못할 시원함이죠. 몇 번인가 소나기를 맞으며 야외에서 배설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수색하는 동안 몇 날 며칠이 되었던 군복을 벗지 못합니다. 여름이니 하복 복장을 해야 했죠.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는데 살갗으로 떨어지는 소나기가 점점 따가워지는 겁니다. 우박은 아닌데 비가 굉장히 거세지는 겁니다. 비 때문에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저는 빨리 바지를 올리고 조 대원들을 찾았습니다. 찾으려고 뛰어가는데 눈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소나기라 비가 그치겠지, 했던 생각은 큰 오산이었죠. 그 비는 지금처럼 끊어질 틈을 보이지 않고 쏟아졌습니다. 정말 지금 비와 비슷합니다. 지금 저 밖에 나간다면 아마도 비를 맞아서 살갗이 따가울 겁니다. 몹시도.”


 카페 주인은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오므리고 밖의 비를 쳐다보았다. 비는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저는 조 대원들을 찾지 못하고 근처의 큰 나무 밑으로 가서 일단 비를 피했습니다. 그렇게 세차게 내리는 비는, 엄청난 속도감으로 떨어지는 비는, 땅의 지형을 바꾼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 내리던 소나기는 땅을 파버렸고 저는 그 모습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떨어지는 비를 그대로 맞은 팔뚝의 살갗은 발갛게 부어오를 정도로 비가 떨어지는 속도가 대단했죠. 조 대원들도 분명 저를 찾고 있을 텐데 어쩐 일인지 대원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거세게 비가 쏟아지면 지대가 약한 산속의 지형은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변형이 옵니다. 그런 현상이 눈으로 보이는 겁니다. 저는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얇은 나뭇잎이나 썩은 나뭇가지는 속도감 있게 떨어지는 비로 인해 구멍이 뚫리고 나뭇잎들이 나뭇가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비는 거칠 줄 모르고 저는 나무 밑에서 그대로 있어야 했죠. 하늘은 거뭇거뭇하더니 어둠이 금세 찾아왔고 몸은 저체온 증으로 떨리기 시작했는데 두려움으로 인해 몸은 심하게 더 벌벌 떨렸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었던 저는 그때 무섭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떨어지는 비는 아주 높은 곳, 하늘의 거대한 구멍에서 물을 마구 퍼붓는 듯했습니다. 지금처럼 말이죠.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기 두려울 정도로 말이죠. 비가 눈에 떨어진다면 눈이 실명될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비를 맞아서 눈이 실명이 되는 생각에 도달한다는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우울함도 몰려왔어요.


 그것을 우울함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한 없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락의 기운이 내 몸을 덮었어요. 저는 들고 있던 총을 꽉 잡고 나무 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산속은 여름이었지만 어둠이 일찍 찾아옵니다. 일단 어둠이 몰아치고 나면 산속은 그야말로 깜깜한 암흑의 세계가 됩니다.” 주인이 컴컴한 어둠에 대해서 말했을 때 마동은 그 어둠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빛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 어둠에 대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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