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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30.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39

14장 6일째

439.


 탁하지 않고 본질적인 어둠 자체가 발하는 농밀한 어둠을 마동은 익히 만나봤다. 깊고 농익은 어둠을 마동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짙고 본질적인 어둠이 세계를 뒤덮는 모습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둠은 몹시 끈적끈적했고 유난히 검은색이어서 그 실체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전 그때 산속의 어둠 속에서 내 앞의 지대가 낮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환상이라든가 착각이 아니었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어요. 얕은 땅이 갈라져서 밑으로 꺼지고 폭우에 흙이 쓸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둠이 짙고 비가 거세게 쏟아져서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어야 했는데, 분명 내 눈에 땅이 변형되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겁니다.”


 카페 주인은 조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궁극적인 공포가 카페 주인의 가슴속에 들어찼던 것이다.


 “늪도 아니고 강도 아닌데 산 중턱에서 흙으로 이루어진 땅이 늪지대처럼 쓸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땅이라는 형태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변하는 형태의 땅의 모습이 한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총을 파지 하지 않은 손으로 연거푸 얼굴로 떨어지는 비를 닦아내면서 나무에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땅이 움직이고 있었어요. 필시 이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에는 내 몸으로 전해지는 현상이 확실했거든요.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심하게 떨 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죠. 그 생각은 곧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이미 내 마음은 힘을 잃어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어요. 산속의 세계가 어둠에 덮여 버렸고 땅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 저쪽에서 이쪽으로 방향성을 잃고 움직였습니다. 흐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째서 이리로 또는 저리로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일까. 빗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인데 말이죠.” 카페 주인은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의 본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여름 치고 덥지 않은 날씨에 에어컨을 틀어놔서 그런지 주인의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제가 착시를 일으킨 걸까요? 아니요. 그건 착시라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후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분명히 땅이 살아있는 듯 지그재그로, 마구잡이로 알 수 없게 일렁이며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리고 말이죠.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더러운 냄새가 가득 들어찼습니다. 암내 같기도 했고 달짝지근하기도 했지만 유쾌한 냄새는 아니었어요. 산속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인가 살아있는 것을 불에 태우는 냄새 같기도 했고, 장작의 꺼진 불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그을음이 살아있는 그 무엇을 거슬리는 냄새라고 할까요. 냄새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어요. 불쾌하고 더러운 냄새였어요. 자세하게 설명이 안 됩니다. 누린내 같은 거요. 달짝지근한 냄새는 코를 막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아까 뉴스에서 기자가 말한 그런 냄새 말이죠.”


 카페 주인은 지금도 그 냄새가 나는 듯 얼굴을 몹시 찡그렸다. 그 냄새도 마동은 알 수 있었다. 냄새는 무정하게 다가와서 무성하게 번지는 독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괄태충이 뿜어내는 누린내였다. 확실하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인간의 우울함을 조장하는 냄새.

 모든 사고를 멎게 만드는 냄새.

 사념이 가득한 냄새.     


 “불쾌한 냄새가 서서히 들어차서 짙어졌다고 할까요. 폭우 속에 그런 냄새를 맡고 있으니 그것은 지옥의 입구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지만 무서움을 떨쳐 내버릴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발도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저 움직이는 땅을 지나쳐야 했는데 저에겐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전 특수훈련을 굉장히 많이 받아온 사람으로서 두려움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제가 그날 경험한 두려움은 훈련으로 극복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움직이는 땅은 내가 서있는 나무 쪽으로 서서히 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군화 밑바닥이 땅 밑으로 움푹 들어갔어요. 땅이 꺼지는 것이었죠. 산속의 밤은 방금 말했지만 굉장히 어둠이 덮어 버립니다. 하지만 이제 점심을 먹은 지 고작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컴컴해지는 것은 이상했습니다. 아주 어두워졌어요. 어둠이 짙어질수록 저의 공포는 배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 어둠 속에서 폭우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움직이는 땅이 내 발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어요. 전 완전히 넋이 나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내 오른발이 땅 밑으로 조금씩 꺼져 들어가는 것이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군화의 밑창은 아주 두껍지만 군화 밑바닥으로 땅바닥을 제외하고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밟힌다는 것을 알았어요.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를 맞았지만 등과 얼굴에는 빗물과는 다른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주인은 조금 긴 틈을 두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말이 빨라졌으며 소리가 커졌다. 주인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심호흡은 두려운 기억을 조금 완화시켜 주는 듯 보였다. 머릿속에 가득한 공포를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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