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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1.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0

14장 6일째

440.


 “그런데 움직이는 것은 땅 위의 것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들에 의해서 땅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전 거기서 빠져나와야 했어요.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그곳을 나오려는데 바다 위에 떠있는 스티로폼을 위태롭게 밟고 있는 아이처럼 제 몸이 휘청거리다 중심을 잃고 그만 넘어졌어요. 넘어져서 움직이는 땅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그 불쾌한 냄새가 백만 개쯤 확 올라오는 겁니다. 바닥에 손을 짚었는데 땅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산속에 온통 지렁이로 덮여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상 유례없던 폭우에 산속의 지렁이가 땅 밑에서 전부 올라왔어요. 모르겠습니다. 말을 하려니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됩니다.”


 “부대에서 지렁이는 요긴하게 쓰입니다. 지렁이는 못 먹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 부대원들은 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는 지렁이를 통해서 모두 없애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렁이를 혐오스러워하지 않죠. 하지만 그때 본 지렁이들은 부대에서 키우는 그런 지렁이가 아니었어요. 그것을 뭐랄까요, 빈민에 허덕이다 허무의 불길로 떨어져 버린, 사변으로 똘똘 뭉친 인간의 모습들 같았어요. 표현을 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수만, 수십만 마리의 지렁이는 죽음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았어요. 휘청거리다 넘어져서 바닥에 손을 짚었을 때 손바닥으로 지렁이들이 꿈틀대는 그 감촉이 전해졌습니다. 지렁이 수십만 마리가 땅 밖으로 기어 나와서 나뭇잎과 흙을 대동해서 움직이니 땅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그 미끌미끌한 감촉을 타고 지렁이가 지니는 습하고 음지의 기운이 내 몸을 전부 문드러지게 만들었어요. 아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지렁이들은 내 군복 바지와 소매를 타고 몸 안으로 꿀렁꿀렁 기어 들어왔어요. 전투복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살갗이 지렁이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그때 그 기분 나쁜 느낌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문득문득 저를 괴롭힙니다. 무엇보다 냄새가 훅 올라왔어요. 구토가 나왔죠. 난 인상을 쓰고 입을 막았습니다. 구토를 하면 왜인이 지렁이가 입으로 들어올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그렇지만 구토는 끝없이 펌프질을 했어요. 발밑에 느껴지는 것은 지렁이 말고 또 다른 무엇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빗소리가 고요하게 들렸다. 비도 천둥도 번개의 시끄러운 모든 소리가 카페 주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또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차기도 전에 발밑에 느껴지는 것 때문에 너무 무서운 생각뿐이었습니다. 딱딱했어요. 발밑에 닿은 감촉은 딱딱한 돌 같은 무엇이었는데 직감적으로 돌은 아니구나, 했습니다. 그 감촉이 군화 밑바닥을 통해서 전해졌어요.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 심장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몰랐죠. 바로 귀 옆에서 북을 두드리듯 쿵쿵거렸어요. 대공포와 같은 거대한 소리로 말이죠. 심장은 터질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뛰었고 역겨운 냄새는 콧속으로 가득 들어찼어요. 이것은 분명히 지옥의 모습이었어요. 전 지옥의 입구 같은 곳에 있었습니다. 군화 밑바닥으로 전해지는 딱딱한 것 역시 일렁거리며 서서히 움직였는데 아마 지렁이들이 그것을 옮기는 중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당시에 너무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이성적인 사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지렁이들을 향해 방아쇠를 여러 번 당겼습니다. 그 사실도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제가 발사를 했는지 기억이 없거든요. 그때, 밟혔던 그 딱딱한 것이 올라오는 것이었어요. 지렁이 수천 마리 사이로 올라온 딱딱한 그것은 사람의 머리였습니다. 눈이 없었어요. 끔찍한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싶었어요. 그런데 눈을 감으면 영원히 뜨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아직 해골이라고 하기에는 뭣했습니다. 머리카락도 붙어있었고 얼굴의 살갗도 벗겨지고 찢어지고 썩은 부분은 있었지만 완전히 해골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눈이 있던 자리가 퀭했습니다. 퀭한 구멍으로 지렁이들이 꾸물대며 옮겨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렁이들은 그것을 뜯어먹고 있었어요. 너무 끔찍했습니다. 입술도 지렁이들이 다 뜯어먹었습니다. 잇몸과 치아만 보였어요. 머리카락은 대부분 붙어있었는데 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전 그만 혼절하고 말았죠.”


 카페 주인은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다시 받아왔다. 마일즈 데이비스 음악은 그제야 제대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모든 소리가 주인의 이야기에 죽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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