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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2.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1

14장 6일째

441.


 “후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눈에 퀭한 시체의 군번줄에는 탈영병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전 혼절한 상태로 부대원들에게 발견되어서 의무대에 실려 왔는데 그곳에서 57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깨어나서 부대원들에게 내가 본 광경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발견한 당시에는 시체와 같이 발견되었고 시체는 자살로 인한 총상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눈이 퀭하다거나 입술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탈영하고 고심 끝에 자살을 했는지, 시체가 되고 시간이 좀 지나서 약간의 부패는 있었지만 아직 시체는 사람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수만 마리의 지렁이라든가 폭우는 애당초 없었다고 말이죠. 제가 앉아서 배설을 할 때 소나기가 온 것은 맞지만 소나기는 말 그대로 조금 힘 있게 내리다가 그쳤다고 하더군요. 제가 시간이 지나도 부대원들에게 오지 않았고 그들이 저를 찾았지만 몇 시간 동안 전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몇 시간 동안 내 활동반경이 전부 노출이 되어서 저를 찾는 수색이 불가능할 리가 없었거든요. 몸의 회복을 되찾은 후 저는 법무대에 불려 가서 총알을 발사하게 된 경위를 말해야 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했지만 군에서는 저의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제대하기 전까지 외부의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가면서 총을 쏘게 된 경위를 말했지만 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똑같았어요. 부대원들도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총알을 발사한 것은 맞지만 그 소리를 부대원들이 듣지 못할 리가 없거든요. 과연 저는 그때 무엇을 본 것일까요. 그리고 그 현상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요. 어찌 되었던 그 사건은 부대 안에서 은밀하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군단장의 입김이 거셌거든요. 그 이후로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카페 주인의 얼굴은 이야기를 하기 전의 얼굴로 돌아와서 평화로워졌다. 너무 오래되었지만 주인도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공포소설을 보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허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저 창밖에 쏟아지는 비가 그대의 비와 흡사하다고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때 나던 불쾌한 냄새, 그 냄새가 지금 나는 듯해요. 나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말이죠.” 카페의 주인은 마동에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며 커피를 한 잔 더 내어 주었다.


 마동은 주인에게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말했다. 마동의 말은 사실이었고 진심이었다. 카페의 주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주인은 자신의 아내마저 지렁이 이야기를 하면 피식 웃고 만다고,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는 허구가 가득하다고 믿지 못한다고 했다. 군대 이야기는 죄다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면서 카페의 주인도 아내의 이야기를 하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마동은 카페의 주인에게 내가 집중해서 듣는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눈빛입니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마동의 눈을 쳐다보았을 때 흔들림이 없이 고요하고 집중하느라 눈 속의 한 점이 명확하게 보였다고 말했다.


 흠.


 마동은 마동 자신의 눈을 도려내려고 했었던 철탑 인간을 떠올렸다.


 동공을 도려내고 나면 세계가 조화로워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시력을 잃어버리고 흉가에서 봤던 끈적끈적한 어둠 속으로 흡착되어 버리는 걸까.

 내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일까.


 마동은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자꾸 나타났다. 담배를 기호라 부르짖는 나약함이 기호를 자꾸 찾듯 생각은 연쇄적으로 끊이지 않는 밤의 여행자처럼 찾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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