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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3.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2

14장 6일째

442.


 카페의 주인은 아내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마동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영역 속으로 사라졌다. 비는 세차고 줄기차게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마동은 카페 주인의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카페 주인의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마동은 사실로 받아들였다. 지금 밖에 쏟아지고 있는 비에도 누린내가 스며들어 있었다. 마동은 그걸 알고 있었다. 이제 장군이가 말한 무서운 그것이 이 세계를 덮칠 것이다.


 커피를 세잔이나 마셔서 그런지 약간의 헛구역질이 났다. 그렇지만 참을 만했다. 시간을 보니 마동은 카페에서 세 시간 정도 앉아있었다. 시간은 거역할 수 없는 명제를 지닌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늘 비슷한 모습으로 시간은 존재해있었고 지금의 시간은 뒤로 밀어내면서 앞으로 가고 있다. 시간은 달을 불러냈고 달은 어두운 곳의 물방울을 대지위에 고스란히 내려 보냈다. 그 사이에 인간들이 서 있었고 시간이라는 관념은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했다. 오로지 인간만이 그것을 부정하거나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군부대가 와서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매직 서커스 유랑단이 와서 재주를 부린다 해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꾸준하고 끊임없이 전진할 뿐이다. 나아가는 시간에 발을 디디고 같이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발 빠르게 가는 시간에 이기려 들면 자신만 손해를 볼뿐이다.


 마동은 그런 시간의 길에 발을 디디고 자신을 버려가면서 걷다 보니 가고자 하는 길에서 한참 벗어나서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늦었다. 이젠 뒤돌아서서 물릴 수도 없었다. 벗어난 길이지만 그 길에서 꾸준히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동의 시계는 정직하게 돌아가고 있다기보다는 진실 되게 움직이고 있다고 믿었다.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마동은 잘 알지 못했지만 정직한 시간의 길에서 마동은 확실하게 조금씩 조금씩 이탈해가고 있었다. 카페에서 세 시간이 흘러간 시간에 비해서 쏟아지는 비를 보며 앉아있는 십 분이 훨씬 길게 느껴졌다. 시간의 연속성은 의식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졌다.


 이제 집으로 가자. 마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산을 뚫고 비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두 두둑 하는 소리는 이 세계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억지로 만들어낸 효과음처럼 우산 밑으로 빗소리는 굉장하게 울려 퍼졌다. 마동은 어젯밤의 보들레르의 시를 다시 보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들이붓듯 쏟아지는 비 때문에 편의점 역시 점원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점원은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 마동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런 폭우 속에 뭘 살 것이 있다고 편의점까지 왔지? 하는 귀찮아 표정을 지으며 마동을 바라보았다.


 마동은 와인코너로 가서 어제의 ‘레테’를 다시 한번 읽어 보려 했다. 하지만 와인코너에 붙어있던 시를 프린트 한 종이는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편의점 점원에게 다가가 이곳에 붙어있던, 시가 적힌 종이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려다가 점원의 불편한 표정을 한 얼굴을 보고 불쾌한 모습으로 바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시 따위는 휴대전화로 검색이 가능한데 굳이 편의점까지 와서 종이를 찾는다며 점원은 마동을 구박할지도 모른다.


 보들레르의 시가 사라져 버리자 편의점의 수많은 물품은 생명을 잃어버린 건초더미처럼 보였다. 마동은 길 잃은 아이처럼 어떤 물품을 집어 들어야 할지 몰라서 서성 거렸다. 보들레르의 시가 사라짐과 동시에 하나의 물품을 고르는데 우왕좌왕했다. 껌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고 면도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마동의 사고 역시 단절되어 버렸다. 마동과 편의점의 물품들 사이에는 여러 개의 공백이 아무런 색도 없이 들어차서 어떤 색이 입혀져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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