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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4.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3

14장 6일째

443.


 마동은 그중에서 구석에 있는 일회용 칫솔세트를 집어 들었다. 휴대용으로 칫솔은 작은 곽 안에 들어가 있었고 칫솔모도 작고 부드러웠다. 작은 치약도 들어있었는데 계면활성화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계면활성제의 역할은 한 마디로 물과 기름을 잘 섞이게 하는 것이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아야 조화로운 것인데 비교적 섞이게 하는 물질이 있다는 것은 균형을 깨는 일이 아닐까. 잘 알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마동은 계면활성화라는 활자가 보이는 휴대용 칫솔세트를 구입하여 들고 나왔다. 마동은 는개에게 열쇠를 줬으니 후에 자신이 사라진 뒤에 집에 온다면 이 휴대용 칫솔세트는 는개를 위해 구입했다는 메모를 볼 것이다. 는개에게 무엇이라도 하나 선물하고 싶었다. 비록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그녀는 맛없는 와인을 맛있게 마실 줄 아는 방법을 알고 있는 유일한 여성이고 비교적 작은 것에 기뻐할 줄 아는 여자이니까 말이다. 마동은 는개를 생각하면서 계산을 하고 빗속을 뚫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동안 마동은 얼굴을 제외하고 전부 비에 젖었다. 비는 분명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지만 적시는 대상의 정의를 두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온 후 욕실에서 천천히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을 틀어서 물줄기를 하체에서부터 천천히 몸에 뿌렸다. 뇌수 독룡의 진액이 묻어있는 것 같은 다리와 발을 먼저 꼼꼼하게 씻었다. 그리고 몸 구석구석을 씻었다.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나머지 부분에 비누칠을 했다. 이번이 마지막 샤워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침착하고 세세하게 샤워를 했다. 비누거품을 내어 몸을 문지르는 행위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적어도 그동안 마동에게는 그랬다.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 비누거품을 잔뜩 내어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몸을 문질러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어쩌면 그동안 쉼 없이 달리면서 땀을 배출시켰는지도 몰랐다. 진지한 샤워가 어울리는 것은 하루 종일 일만 하고 들어와서 비누칠을 할 때보다 한 시간을 달려 땀을 잔뜩 흘린 후 하는 샤워였다. 질적으로 충만한 샤워라고 할 수 있었다. 기이하지만 분명 그러했다.


 마동은 욕실의 거울 앞에서 투명해진 자신을 뜯어보았다. 여름 햇볕에 잘 그을린 피부가 보였고 쇄골이 드러났고 발달된 가슴 근육이 눈앞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꽤 괜찮은 몸의 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한순간에 타고나는 것이 아니었다. 신체의 균형은 몸의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신체의 균형을 잡기 위해 꾸준하게 달려왔다. 얼굴을 거울 가까이 대고 성애가 끼어버린 거울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변이가 찾아오기 전의 마동의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듯 마동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더 이상 사라 발렌샤 얀시엔도 보이지 않았고 소피의 모습도, 분홍 간호사의 얼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떠한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조금의 누린내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마동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이 자신의 얼굴인지, 감기로 인해 변해버린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인지, 마동 자신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거울 속에 있는 상이 ‘나’라고 하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니 분명 거울 저 편의 나는 변이 한 나 자신일지도 몰랐다. 마동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를 이어 내 몸에 내려온 유전자의 원형질이 억압이라는 것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고 싶었다. 일어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 다가오는 무서움의 결정체는 사람들의 의지로 제어가 불가능한 것이다. 오로지 마동 자신만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순간 F6F헬켓 한대의 무게에 달하는 책임감이 마동의 어깨를 짓눌렀다. 거울 속의 마동은 희미해져서 인지 마동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거울 속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또렷하고 강하게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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