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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5.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4

15장 6일째 저녁

444.


 거울 속의 사물은 회사의 사무실에 있는 사물과는 달랐다. 오너의 사무실에서 물품들이 가득 안고 있었던 관념들은 거울 속에 비치는 욕실의 모습에는 배제되어 있었다. 권태라든가 단순함 등이 싹 빠져버린 모습만 가득했다. 완벽한 모습이었다. 단지 거울에 자신의 모습만 조금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비누거품을 보고 있으니 마음의 공백이 다시 찾아왔다. 찾아온 공백의 덩어리에 상실감이 틀에 맞는 조립품처럼 들어와서 그 공백을 매웠다. 물줄기가 또르르 떨어지는 곳에는 큰 공백과 상실감이 나란히 서서 마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동은 그들과 타협점을 찾기 싫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공백은 마동의 마음에 큰 구멍을 만들었다. 백화점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가 허무의 공백에 하염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상실감이었다. 마동은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이처럼 울 수는 없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로 일어나서 는개를 찾아갈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울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몸속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 바짝 마를 수 있도록 눈물을 짜내고 싶었다.



[6일째 저녁]

 저녁이 되었다. 이제 정리는 거의 끝났고 집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남은 것은 는개가 알아서 할 것이다. 소피에게 디렉트 메시지를 넣었다. 소피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마동은 소피와 만나기로 하고 그녀가 도착하면 만날 수 있는 날과 장소를 연락해달라며 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알려준 폰 번호는 는개의 번호였다. 는개가 소피에게 잘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가슴수술비도 부담되지 않게, 기분이 상하지 않게 잘 전달될 것이다. 는개에게 건네 준 작은 상자 속에 모든 것을 잘 적어놨으니 그녀는 침착하게 잘 해낼 것이다. 마동은 확신했다. 하찮은 현실 속에서 는개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설령 여기가 이곳이 현실의 끝이라고 해도-축복받은 것이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마동은 고개를 한 번 힘 있게 끄덕였다.


 아주 진지하게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마동은 는개가 더욱 심하게 보고 싶었다. 는개의 얼굴에 눈에 아른거렸다. 후각적으로 보고 싶었다. 는개를 향한 의식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체취를 맡고 싶었고 촉각적으로 그녀를 느끼고 싶었다. 는개를 향한 의식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체취를 맡고 싶었고 촉각적으로 그녀를 느끼고 싶었다.


 그녀의 손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잡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작고 부드러운 긴 손가락, 정갈한 손톱과 는개스러운 매니큐어를 마동을 떠 올렸다. 는개의 손을 잡고 냉정하지만 따뜻한 는개의 손바닥의 세계를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망은 늘 큰 법이다. 그녀는 마동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해있었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마동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미미한 작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럴수록 그녀의 말투와 그녀의 눈빛, 그녀의 귀와 목선과 마른 등이 떠올랐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보다 근원적으로 신비한 눈빛을 지니고 있는 는개의 눈을 다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속이 아닌 사실의 눈빛을 하고 있는 는개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녀의 포니테일, 포니테일의 머리가 풀리는 순간과 엎드렸을 때 엉덩이 그리고 엉덩이를 타고 오르는 허리까지의 선, 엉덩이와 허리 사이의 볼록한 부분을 쓰다듬던 자신의 손길을 마동은 떠올렸다. 는개는 그 부분을 만져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서 그녀의 허리 밑 볼록한 부분을 만질 때의 생생한 감촉을 떠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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