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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6.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5

15장 6일째 저녁

445.


 는개도 내가 사라지고 나면 상실이 찾아올까. 그녀에 대해서 생각을 시작하니 폭주한 기관차처럼 끝도 없었다. 는개를 의식할 때마다 그녀가 마치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저 왔어요, 당신 샤워를 했군요,라고 말을 하며 나를 끌어안는다. 는개의 기분 좋은 향을 맡는다.


 마동은 눈을 감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생각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는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일은 지구 반대편의 일처럼 멀게 만 느껴졌다. 상실감의 끝으로 생각의 끈이 다가갈수록 무력감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관절의 나사가 하나하나씩 전부 풀리듯, 몸이 조각으로 분리가 되는 허무가 조금씩 찾아왔다.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분해가 되어 본드로도 다시 붙일 수 없었다.


 어째서 는개에 대한 갈증이 이토록 드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내 자의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마동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다. 정확하게 그녀를 향하고 있는 마동의 촉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는개는 마동을 보면 언제나 웃어 주었다. 그녀는 참을성 있게 마동을 기다리며 꾸준하게 하루를 쌓아가듯 웃음을 보여줬다. 는개의 웃음 속에는 신뢰라든가 믿음이 깔려있었다. 타인에게 향하는 적당한 친절이 배인 경멸 섞인 웃음이 아니었다. 마동에게 많이 웃어주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없었다. 그것은 마동이 타인에게 웃음을 보이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마동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것인지 웃지 않으려고 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시점의 한 순간부터 웃지 않게 되었다. 웃음을 보이지 않는 인간에게 언제나 웃어주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는개가 웃으면 그레이스 켈리보다 더 환하게 보였다. 누군가 웃어준다, 라는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며 생활하지 않았다. 웃음에 대한 마동이 만든 벽은 두터웠고 너무나 단단해서 포클레인으로도 어림도 없었다.


 그 런 데.


 지금 그녀를 떠올리면, 는개를 생각하면 할수록 상실의 공백이 조금씩 매워졌다. 그녀의 웃음을 떠올리고 그녀의 언어를 떠올렸다. 포클레인으로도 꿈쩍 않던 마동의 탄탄하고 두터운 시멘트 벽이 용암에 흘러내리듯 힘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혼란스러울 만큼 신기한 일이고, 놀라운 현상이라고 마동은 생각이 들었다. 양철로봇의 텅 비어 있던 곳이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지듯 는개로 인해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분명 그러한 매력적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공백이 는개의 웃음으로 서서히 채워져 갔다. 마동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그녀의 작은 마음이 물처럼 흘렀다. 마동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거실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보며 는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상실의 공백이 조금씩 매워지면서 마동의 입술이 초승달처럼 움직였다. 그녀를 떠올리면 미소는 자연스럽게 따라붙게 되었다. 는개의 얼굴을 떠올리면 시간이 퇴보해가는 느낌도 들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이제 곧 닥치는 위화감에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녀의 미소는 그런 것이다.


 거실의 창문에 비가 부딪히는 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뉴스의 보도를 접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연일 일어나는 사건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에 대해서 갖가지 추측을 했다. 억측이 난무했고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의미 없는 말을 하늘에 대고 내뱉었다. 천둥을 동반한 마른번개가 크게 한 번 내리쳤다. 자동차 안에서 들리는, 앞 차를 쿵 박았을 때 소리만큼 굉장히 큰 소리의 번개였다. 아파트의 거실이 울릴 정도로 컸다. 또 한 번의 누린내가 거실 안으로 몰려왔다. 영화 속에서 녹색의 연기가 주인공의 콧속으로 훅 빨려 들어오듯 거실로 누린내가 들어찼다. 마동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열이 올라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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