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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0.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49

15장 6일째 저녁

449.


 마동은 방파제에 나왔다. 방파제에서 보이는 등대는 옛 연인처럼 언제나 그곳에 우뚝 선채로 등대의 불빛을 쏘아대고 있지만 그 빛이 멀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름의 방파제는 전문 낚시꾼들로 가득해야 했지만 하늘에서 연일 검은 비만 뿌려대고 있어서 낚시꾼들은 투덜거리며 방파제를 모두 떠났다. 다른 소일거리에 시간을 소모하고 있어서 인지 비가 와도 늘 보이던 한 두 명의 조인도 보이지 않았다.


 낚시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가 오고 있음에도 방파제가 끝나는 부분, 해안의 등대로 이어지는 절벽 밑에는 해녀 물질을 하여 해산물을 건져 올려서 낚시꾼들과 관광객에게 그 자리에서 썰어 판매하는 해녀가 보였다. 해녀 옆에는 우산을 쓴 구청 직원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두 남자가 해녀를 설득하고 있었다. 오늘은 등대에 올라오는 관광객이 없어요, 하는 말이 들렸다. 해녀는 구청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구청 직원은 어서 철수하라는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라이쳐스 브라더스의 노래처럼 내리는 비 사이에서 마른번개가 떨어졌다. 구청 직원들은 비가 지금보다 더 오면 해안은 위험하니 안전문제로 해녀를 데리고 올라가려 했다. 해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건져 올린 해산물은 다 팔고 갈 것이라는 기세였다. 그렇지만 그 기세는 곧 꺾였다. 자꾸 이러시면, 신고도 하지 않고 장사하는 불법영업으로 인해 앞으로 이곳에서 영영 해산물을 팔지 못하게 될 거다, 라는 말에 해녀는 짐을 챙겼고, 구청 직원들에게 욕을 하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모습이 방파제에서 사라지고 나자 그야말로 방파제는 등대의 옅은 불빛과 멀리서 엄습해오는 자줏빛 해무뿐이었다.


 마동은 자신의 몸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임의 느낌을 감지했다.


 어둠의 도트가 서서히 움직이려는 것일까.


 마동의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반딧불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아주 아련하고 미미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그녀의 작은 마음일지도 몰라.


 그것이 아니라면 어둠의 도트가 움직이는 것이리라. 감기의 초기 증상처럼 불길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 느낌이 무엇이 되었던, 변이가 불완전하게 시작되려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달은 이틀째 보이지 않았고 비는 이틀을 쉬지 않고 내렸다. 레인 시즌에 내리는 비라고 해도 기분 나쁠 정도로 많이 쏟아졌다. 마동은 그런 날의 지속이 자신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마도 구름 저 너머에서 달과 태양은 한껏 심술을 부리고 싶어 할지도 몰랐다. 인간은 변덕이 심해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싫어하지만 일주일만 비가 내려 해가 없어져 버리면 불안해하고 강박적으로 탈바꿈해서 태양이 보고 싶다며 기상청에 전화를 수없이 할 것이다. 마동은 이제 태양을 볼일이 없었다. 태양의 자외선을 받으며 피부를 검게 그을려가며 신나게 달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방파제의 길을 걸어서 테트라포드에 올라섰다. 방파제에 서서 바라보는 저 먼바다는 자줏빛 해무로 거대한 도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타협이 없는 자줏빛 해무는 어두운 무엇인가가 만들어내는 공간을 이곳으로 몰고 와서 이쪽 세계를 덮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큰 줄기의 마른번개가 저 멀리서 바다의 한 곳으로 떨어져 내려 꽂혔다. 바다는 고통스럽게 있는 힘을 다해 자신에게 떨어진 마른번개를 받아쳐서 대기로 올려 보냈다. 마른번개가 자아내는 메마른 소리는 주위의 바다를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바다는 죽어버린 호수처럼 검붉고 불안했다. 바닷속의 목 없는 생명체가 유조선의 모습들을 그림에서 지우개로 지우듯 먹어버리려 방파제가 있는 이곳으로 몰려들어 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해무는 전기 스파크처럼 번개의 마찰과 서로 다른 파동의 매질의 경계면을 지나치며 만들어 내는 번쩍거리고 큰 섬광을 뿜었다. 자줏빛 해무는 하늘을 마치 가공의 모습으로 뒤바꿔 버리는 듯했다. 인공적인 구름에 인공적인 색을 뿌려 그 속에 새끼 좀들을 집어넣고 그들이 성충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늘은 평소와는 몹시 달랐다.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조금의 후퇴 성도 없이 정중한 인사의 냄새를 풍기며 자줏빛 해무는 방파제로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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